1795년 10월27일, 스페인 마드리드 산 로렌소(San Lorenzo). 스페인과 미국이 '우정과 국경ㆍ항행에 관한 조약'을 맺었다. 산 로렌소 조약, 또는 핑크니 조약으로도 불리는 협정의 골자는 두 가지. 북위 31도선을 국경으로 정하고 미국인들의 스페인령 미시시피강 자유항해권을 보장했다. 협상은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영국을 가상 적국으로 삼고 있었기에 양국은 서로를 이해하려 애썼다. 미국인들은 조약을 반겼다. 미시시피강 이용권뿐 아니라 국경의 원주민(인디언)들에게 더 이상 무기를 공급하지 않겠다는 스페인의 약속까지 받아냈으니까. 양국의 우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미국의 영토욕심 탓이다. 국력이 쇠퇴해 북미 서부를 프랑스에 넘긴 스페인과 달리 욱일승천하던 미국은 프랑스령으로 넘어간 루이지애나를 1803년 사들인 다음 북위 31도 남쪽인 웨스트플로리다도 루이지애나의 일부라며 영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거주인구를 늘려가던 미국인들은 1810년 스페인에 항거하는 반란을 일으켜 '웨스트플로리다 공화국'을 세웠다. 스페인은 분노했으나 이미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한 터. 3개월 뒤 이 공화국은 미국에 흡수돼버렸다. 1821년에는 이스트플로리다까지 500만달러에 미국으로 넘어갔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꼴인 플로리다 합병은 한 차례에 그치지 않았다. 1845년 멕시코의 영토였던 텍사스와 뉴멕시코를 미국이 차지하는데도 '상대국의 호의에 의한 미국인 거주인구 증가-반란-미국 정부 개입-전쟁-합병'이라는 절차를 밟았다. 스페인과 멕시코가 억울하게 빼앗긴 지역은 오늘날 미국의 핵심 산업지대로 커졌다. 곡창지대와 천혜의 항만 조건, 지하자원(원유)를 품은 미국 중남부와 서부에는 침략의 역사가 깔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