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란과 서방의 핵개발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며 국제유가가 급등세를 보이자 미국경제에 중동 정정불안에 따른 유가급등으로 성장동력을 상실했던 지난해의 '리비아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1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는 전날보다 1.65달러(1.7%) 오른 배럴당 108.84달러를 기록해 10개월 만에 최고 수준에 육박했다. 북해산브렌트유는 3.60달러(2.93%) 오른 배럴당 125.26달러로 치솟았다.
이란 핵시설을 둘러싼 긴장고조가 유가상승의 기폭제가 됐다. 이날 이스라엘은 이란 공격을 염두에 두고 탄도요격미사일 실험을 조만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음주 워싱턴을 방문하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경제제재 등의 압박조치로 이란의 핵 포기를 실현하지 못한다고 판단될 경우 독자적으로 이란을 공격하겠다고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이란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물리적 충돌사태에 대비해 석유를 사들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석유 애널리스트인 앤드루 리포는 "불확실성이 너무 높다"며 "시장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이란이 어떤 식으로든 이웃국가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티븐 추 미 에너지장관은 이날 원유공급 상황과 관련해 추가 생산여력이 있고 유가안정을 위해 전략비축유 방출을 검토하는 등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시장의 불안을 진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월가에서는 미 경제가 지난해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리비아가 중동사태의 뇌관이었다면 올해는 이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0년 말 시작된 북아프라카와 아랍권 국가의 반정부 시위는 지난해 2월 리비아로 번졌고 3월에는 다국적군이 리비아 사태에 개입하기에 이르렀다. 국제유가는 이에 맞춰 2010년 말 브렌트유를 기준으로 92 달러대에서 2월 110달러대로 올랐고 5월에 브렌트유는 126달러, WTI는 114달러까지 치솟았다.
미 경제는 2010년 3.0%의 성장률로 탄탄한 회복세를 보였지만 이러한 고유가 충격에 2011년 1ㆍ4분기 성장률이 0.4%까지 떨어졌다. 이후 2ㆍ4분기 1.3%, 3ㆍ4분기 1.8%에 이어 4ㆍ4분기에는 3.0%로 성장속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상태다.
유가상승은 미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미국 휘발유 가격은 평균 배럴당 3.73달러(지난달 29일 기준)을 기록하면서 겨울철 사상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해의 경우 최고치는 갤런당 3.98달러. 사상최고치는 2008년의 4.5달러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여름이 다가오면 갤런당 20센트 정도 오르고 또 이란과의 긴장이 고조되면 추가로 50센트가 더 오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휘발유 가격이 사상최고치 돌파는 물론 갤런당 5달러까지 상승하는 것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휘발유 가격이 1달러 오르면 연간 미국 소비자들이 추가로 부담해야 금액은 1,000억달러 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캐이시 린 글로벌 포렉스트레이딩(GFT) 리서치디렉터는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를 경우 미국 경제성장률은 0.2~0.3%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만약 유가가 지속적으로 강세를 유지한다면 유럽 국가들의 채무위기와 더불어 경제에 큰 위협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