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회장님들
경영구상도 하고 건강도 챙기고…허창수·동수-박용만 회장고급 세단·수행비서 없이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녀
김현상기자 kim0123@sed.co.kr
‘수억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세단과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수행원들.’
흔히 ‘대기업 총수’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다. 그중에서도 넓고 안락한 좌석을 갖춘 고급 세단은 ‘회장님’들의 빼놓을 수 없는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다. 하지만 고급 세단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수행원도 없이 홀로 걷는 것을 즐기는 일명 ‘뚜벅이 회장님’들이 적지 않아 주목을 끌고 있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사촌지간인 허동수 GS칼텍스 회장과 허창수(사진) GS그룹 회장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걷기 마니아’다.
허창수 회장은 평소 지하철 한두 정거장 정도의 거리는 차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닌다. 허 회장은 그룹 사옥이 있는 역삼동 GS타워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의 강남역까지는 웬만하면 수행비서도 없이 혼자 걸어서 이동하고는 한다. 얼마 전에는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정기총회에 참석한 뒤 을지로입구에 있는 소공동 롯데백화점까지 걸어가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그는 여의도 전경련 사무실에서 회의를 마치고 2.3㎞ 떨어진 63빌딩까지 종종 걸어서 이동한다.
국내 재계 서열 7위의 그룹을 이끄는 대기업 총수가 최고급 전용차를 놓아두고 일반 시민들 틈에 껴 걸어 다니는 것은 이례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평소 검소하고 소탈한 성격의 허 회장에게 걷는 것은 또 다른 경영구상의 시간이다. 차 안에서는 그냥 지나치기 쉬웠던 주변의 모습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최신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바쁜 일정 속에 따로 시간을 내지 않고도 건강을 챙길 수 있다는 점은 ‘덤’이다. 그는 회사 임직원들에게 직접 만보기를 선물하며 ‘걷기 예찬론’을 펼치기도 한다.
가급적 하루 1만보 걷기를 원칙으로 하는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은 특별한 약속이 없는 날이면 역삼동 GS타워에서 헬스클럽이 있는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이나 청담동 자택까지 걸어서 퇴근한다. 또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의 약속장소는 지하철을 타거나 도보로 이동하기도 한다. 그가 평소 애용하는 특정 상표의 워킹화는 한때 ‘회장님이 신는 신발’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최근 두산그룹 회장에 오른 박용만 회장 역시 걷기를 즐긴다. 박 회장은 ㈜두산 회장으로 그룹 실무를 전담할 당시 사옥이 위치한 동대문에서 점심 미팅이 있는 장충동까지의 거리는 차를 타지 않고 수행원도 없이 혼자 걸어 다니고는 했다. 박 회장은 조부인 박승직 창업주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룹의 모태인 ‘박승직 상점’이 자리했던 종로4가에서부터 조부가 보부상으로 활동하던 전남 해남까지 총 600㎞의 거리를 토요일마다 20~30㎞씩 걸어 국토종단을 완주했을 정도로 ‘튼튼한 다리’를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