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 하락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주요 국가의 경기가 위축되면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북미 지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자동차 수출 시장인 중동 지역의 경기 침체가 장기화될 경우 해외 판매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동 지역 수출 물량의 90% 이상을 소화하고 있는 현대·기아차는 유가 하락에 따른 수출 감소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0월까지 우리나라의 중동 지역 자동차 수출 물량은 총 44만7,283대로 전년 동기 대비 10.1% 감소했다. 수출 감소 폭은 러시아를 포함한 비유럽연합(-60.0%), 아프리카(-37.1%), 아시아(-26.8%)에 이어 네 번째지만 이들 지역의 경우 연간 수출 물량이 20만대 미만인 데 반해 중동은 연 60만대 규모로 지난해 기준으로 북미(110만대)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수출 시장이라는 점에서 무게감이 다르다는 평가다.
중동 자동차 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꾸준한 성장세를 나타냈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수출 물량도 2010년 58만대 수준에서 지난해 62만대로 늘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유가 하락이 지속되고 시리아 내전과 테러 등으로 정정 불안이 가중되면서 올해 수출 물량이 다시 60만대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동 시장이 냉각되면서 현지 시장 공략을 강화하던 현대·기아차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중동에서 52만2,480대를 판매했다. 특히 현대차는 지난해 중동 주요12개국에서 총 32만7,951대를 판매, 1976년 중동에 진출한 후 역대 최대 판매실적을 거뒀다. 현대차는 4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정의선 부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중동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해외 대리점 회의를 열 정도로 중동 시장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저유가로 현지 고객들의 구매력이 떨어진 데다 엔저를 앞세운 일본 업체들이 판촉 공세를 강화하면서 지난달까지 현대·기아차의 중동 지역 판매량은 44만여대로 전년 동기 대비 8%가량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현대·기아차는 이에 따라 판매 네트워크 강화와 신차 투입 등을 통해 내년 중동시장에서의 실지(失地) 회복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현대차는 UAE 두바이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도 디지털 쇼룸을 운영하고 딜러망을 꾸준히 확대할 계획이다. 또 러시아·인도·터키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쏠라리스'와 '리오(프라이드)' '크레타' 'i10' 등을 중동에 수출, 해외 생산 차량의 판매 비중을 높여나간다는 전략이다. 제네시스 브랜드의 첫 차인 'EQ900(해외명 G90)'을 내년 하반기 미국에 이어 중동 시장에 투입, 현지 고급차 시장 공략에도 나선다. 인구 8,000만명의 중동 최대 소비 시장인 이란의 경제제재 해제로 수출길이 다시 열리는 것도 호재다. 현대차 관계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등 기존 주력 시장에 이란 수출이 본격화할 경우 내년에는 다시 성장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