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지폐 한 장에는 최소 10여 가지 이상의 위․변조 방지기술이 적용돼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개발된 위폐 방지기술 대부분은 이미 고성능 프린터와 스캐너, 복사기로 무장한 전문 위폐범들의 손에 백기를 든 상태다. 이에 과학자들은 첨단과학기술을 동원, 복제가 불가능한 위폐 방지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마이크로렌즈 은선, 광섬유 삽입 펄프 등의 차세대 기술이 위폐범들과의 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도처에서 범람하는 위조지폐 미국 조폐국(BEP)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는 최소 7,000만 달러 이상의 위조 달러화가 유통되고 있다. 또한 매년 1억 달러 이상의 위조지폐가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에만 1만5,678장의 위조지폐가 발견되는 등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위조지폐의 범람은 전 세계 모든 국가, 모든 화폐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위조지폐는 단순히 가짜 돈이라는 의미를 넘어 상거래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암(癌)적 존재다. 위조지폐가 범람할 경우 한 나라의 경제 시스템이 근간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 각국의 화폐 제조기관들이 새 지폐를 발행할 때마다 새로운 위․변조 방지기술을 개발, 적용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결코 복제되지 않을 것이라던 기술들조차 얼마 지나지 않아 전문 위폐범들의 탁월한 기술력(?) 앞에 무장해제 된다는 것. 북한이 만든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100달러짜리 초정밀 위조지폐인 '슈퍼노트'는 위조지폐 감별기로도 식별이 어렵다. 1,500만 달러 상당의 위조지폐를 제작했던 유명한 전직 위조지폐 제작자 웨인 빅터 데니스는 "위조지폐 방지기술이 발전할수록 위조지폐 제조기술 또한 나날이 정교화, 세밀화, 첨단화된다"며 "시간이 문제일 뿐 위조하지 못할 지폐는 없다"고 단언할 정도다. 디지털 혁명이 위폐 범람의 주범 위조지폐를 막기 위해 지금까지 개발된 위․변조 방지기술은 약 40여종. 나라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지폐 한 장에는 이들 중 최소 10여종 이상이 숨어져 있으며 매년 한층 강력한 신기술이 추가로 도입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조지폐 유통량은 전혀 줄지 않고 있는 상태다. 적발 건수로 보면 오히려 10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왜일까. 전문가들은 디지털 혁명을 주범으로 꼽는다. 2000년을 전후해 프린터, 스캐너, 복사기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정교한 위․변조 기술을 복제해 내기가 한결 손쉬워 졌다는 것. 실제 예전의 위조지폐는 지폐에 그려진 세밀한 인물과 그림을 일일이 금속판에 조각해 인쇄기로 찍어내야 했지만 지금은 고성능 스캐너와 프린터가 그 일을 대신한다. 혹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포토샵으로 고치면 그만이다. 작은 문자로 된 '은선(security thread)'의 경우에도 위조지폐를 만들 종이에 해당 글자를 프린트한 뒤 담배종이 사이에 끼워두는 방식으로 진품과 똑같이 만들 수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체포된 위폐범 아트 윌리엄스 2세는 프린터와 스캐너만으로 무려 1,000만 달러의 위조지폐를 제조하기도 했다. 미국 재무부 비밀검찰국 소속의 마이클 메리트 부장보는 "1990년대 초만 해도 전체 위조지폐 중 프린터, 스캐너, 복사기로 만든 것은 1%에 불과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그 비율이 56%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고도의 기술을 깨는 간단한 아이디어 그에 따르면 이처럼 고성능 IT기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위폐범들은 현재 상용화된 위․변조 방지기술들을 손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기술개발에는 오랜 시간과 많은 연구비가 투입되지만 이를 무너뜨리는 방법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다는 설명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위조지폐가 유통되고 있는 미국 100달러 은행권을 예로 들어보자. 위폐범들은 '워터마크'(빛에 비추면 나타나는 숨은 그림)와 '은선'이라는 2개의 보안망을 5달러 지폐 1장으로 무너뜨렸다. 5달러의 워터마크와 은선이 100달러와 동일한 위치에 있음을 착안, 5달러의 잉크를 탈색해 100달러로 탈바꿈 시키는 것. 가장 강력한 위조지폐 기술에 속하는 '미세 문자'도 머리카락 굵기의 얇은 선을 그릴 수 있는 래피도그래프(rapidograph) 펜 하나로 간단히 복제된다. 특히 보는 각도에 따라 색상이 달라지는 색 변환잉크(OVI)의 경우 현존 최강의 위조지폐 방지장치라는 명성과 달리 공예점에서 파는 값싼 반짝이 장식에 의해 백기를 들었다. 반짝이를 믹서기로 곱게 갈아 투명 광택제에 섞어 바르면 전문가가 아닌 이상 진짜 OVI와 구별이 어렵기 때문이다. 위조가 불가능한 지폐 개발 잇따라 이에 따라 각국 조폐당국과 과학자들은 다양한 분야의 첨단과학기술을 총동원해 위폐범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차세대 위조지폐 방지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그렇다면 미래의 지폐에는 과연 어떠한 기술들이 적용될까. 위조지폐의 최대 피해자인 미국 조폐국이 올해 중 발행할 예정인 100달러 신권에 채용된 기술들이 이를 가늠할 하나의 지표가 될 전망이다. 미국 조폐국의 래리 펠릭스 국장은 "보안상 모든 기술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100달러 신권에 탑재될 위조지폐 방지기술의 핵심은 마이크로렌즈(microlens) 은선"이라고 밝혔다. 이는 65만개에 달하는 미세한 원형 유리렌즈(glass dome)로 은선을 만드는 것으로서 빛 아래서 지폐를 움직이면 렌즈 안에 새겨진 이미지가 나타난다. 이 은선은 65만개의 소형 렌즈가 장착된 마이크로 프린터 없이는 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미국 조폐국은 또 광섬유 등을 사용해 지폐의 종이 자체에도 얇은 은선들을 숨겨둘 계획이다. 이들은 자외선에서만 빛을 발하는데 위폐범들이 이런 종이를 구하지 못하는 이상 위폐 제조는 꿈에 불과하다. 워터마크, OVI 등의 기존 복제방지 장치 위에 미세문자를 덧입히는 복합미세인쇄기법 또한 핵심 전략의 하나다. 미국 조폐국은 이 같은 통합형 위폐 방지기술이 위폐범들에게 넘지 못할 산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 스캐너, 복사기를 활용한 위폐 제조 방지 방안도 채용될 예정이다. 스캐너 등이 지폐의 특정 도안을 인식하는 즉시 작동을 멈추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이들이 내뿜는 인조 광에서만 색을 띄어 원형 그대로의 복사를 막는 메타메릭잉크(metameric ink)의 사용 등이 그것이다. 래리 국장은 "새로운 100달러 지폐가 위폐범과의 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킬 것이라고 확언할 수는 없다"며 "하지만 세계 최고의 위폐범일지라도 모든 위조기술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할 것이라는 점만은 확실하다"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