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갬블러

채수종 <국제부장>

[데스크 칼럼] 갬블러 채수종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자 표지에 ‘갬블러(THE GAMBLERㆍ도박꾼)’라는 제목으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진을 크게 실었다. 사진 아래쪽에는 ‘김정일이 (아무도)북한의 핵보유에 대해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을 무기로 베팅을 하고 있다’고 부제를 달았다. 북한이 ‘2ㆍ10 핵무기 보유, 6자회담 불참 선언’으로 도박을 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평가를 반영한 것이다. 북 '핵무기로 체제수호' 도박 김 위원장의 베팅이 남ㆍ북한, 그리고 미국ㆍ중국ㆍ일본ㆍ러시아 등 관련국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속단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2ㆍ10 선언’ 이후 이들 관련국들이 일제히 ‘무조건 회담복귀’를 촉구하고 나서는 등 국제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김 위원장이 ‘핵무기’라는 ‘히든카드’로 판을 키우는 데는 일단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김 위원장이 도박에 나선 가장 큰 이유는 ‘체제수호’다. 따라서 도박 상대도 유감스럽게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다. ‘북한체제의 안전보장’이라는 카드를 쥐고 있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다. 미국은 그동안 부시 대통령의 ‘폭정종식’ ‘자유의 확산’,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 등으로 북한의 ‘체제변형’ 을 강요해왔다. 따라서 이번 북한 핵 사태는 김 위원장이 부시 대통령의 파상적인 핵포기 압력을 받아친 것으로 보면 된다. 하지만 도박에는 위험이 따른다. 특히 북한 입장에서 이번 도박은 실패하면 모든 것을 잃는 ‘올인’게임이다. ‘2ㆍ10 선언’ 이후 관련국들이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는 압박강도를 높이자 북한의 태도가 다소 유연해졌다. 김 위원장은 최근 평양에서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대외연락부장을 만나 “한반도 비핵화 및 대화를 통한 평화적인 문제해결 입장은 변함이 없다”며 “여건이 되면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강경 일변도로 밀고 나가기에는 부담이 컸을 것이다. 브래들리 마틴 루이지애나주립대 교수는 최근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김정일은 정권의 미래가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걱정하고 있다”며 “김정일은 독재자로 냉혈한이며 가끔은 잔인하지만 히틀러처럼 대량학살을 초래할 미치광이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히틀러와 달리 김정일의 베팅에는 계산이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미국도 상황이 그다지 좋지는 않다. 이라크 정정이 여전히 불안한 상태에서 이란ㆍ시리아와의 마찰음이 커지고 있는데 북한문제까지 확산될 경우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의 자존심을 구길 수 있다. 김 위원장, 부시 대통령 모두 겉으로는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번 북핵파문은 예상외로 쉽게 풀릴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의 체면’을 세워줄 것인가에 달려있다. 북한 입장에서 판만 키워놓고 그냥 아무것도 없던 것처럼 다시 회담에 복귀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셀리그 해리슨 국제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뉴욕 맨해튼의 코리아소사이어티에서 열린 북한 핵문제 포럼에서 “부시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평화 공존’(peaceful coexistence)이라는 두 단어만 말하면 북한 핵문제는 저절로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험보다는 평화해결 나서야 그는 “미국은 체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공존할 준비가 돼 있다는 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과 부시 대통령의 도박에서 누가 위너(승리자)가 될 것인가. 또 본의 아니게 게임에 끌려들어가고 있는 한국을 비롯, 주변국들은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가. 결과가 궁금하다. 하지만 어떤 가치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적 해결’이다. 누가 이기고, 어떤 이해득실이 있는지 따지는 것은 그 다음이다. 갬블(Gamble)은 ‘도박하다’는 뜻이지만 ‘이판사판 모험을 하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 이번 도박판에서 주연을 맡지 못한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연급 조연’의 역할이다. sjchae@sed.co.kr 입력시간 : 2005-02-2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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