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기준으로 조선의 과학기술이 세계수준에서 결코 뒤지지 않았다. 북방(여진족)과 남방(대마도) 원정에서 보듯 강한 군사력, 발달된 농업기술과 생산력, 유교문화, 과학기술이 어우러지면서 우리 역사상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과학기술 측면에서는 장영실이라는 천재가 나타나 천문관측용 간의·혼천의, 금속활자인 갑인자, 기계식 물시계인 자격루, 해시계인 앙부일구, 강수량 측정을 위한 측우기·수표 등의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새 왕조 초기의 진취적인 기상, 앞서 몽골제국을 통해 들어온 문물이 이런 발전의 배경이 됐다. 문제는 상황이 지속하지 못한 데에 있었다. 더 나은 진보를 위해서는 개방적인 사고와 외부의 자극이 필요했으나 점점 폐쇄적이 된 조선사회는 이를 막았다.
사진은 덕수궁에 있는 자격루다. 1434년(세종 16년) 장영실이 발명한 것은 지금 남아 있지 않고 1536년(중종 31년) 다시 제작한 일부가 덕수궁에 설치돼 있다. 이전의 물시계는 사람이 지켜서서 일일이 물통의 눈금을 확인해야 했다면 자격루는 기계시스템을 통해 종이나 징·북이 자동으로 울려 시간을 알려준 획기적인 장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