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질 듯 했던 하이닉스반도체의 매각 작업에 극적 반전이 일어났다.
현대중공업이 인수전에 뛰어들지 않겠다고 밝힌 6일. 채권단은 불참소식에 당황하는 듯 하면서도 의외로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채권단 관계자는 “2개 정도의 다른 대기업이 인수 여부를 내부적으로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도 했다. 깜짝 카드가 있다는 뉘앙스였다. 그리고 이날 저녁 SK와 STX가 사실상 인수전 참여를 선언했다. 예상외의 강자가 뛰어든 것이다.
◇암운…그리고 반전=마이크론테크놀로지부터 시작해 현대중공업에 이르기까지 천당과 지옥을 오갔던 하이닉스의 매각 작업은 재매각 작업에서도 예측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분명한 점은 어느 때보다 분위기가 한층 긍정적 톤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채권단은 그간 “인수자금 부담도 없고 이후 발생할 리스크를 충분히 소화할 정도가 되는 기업에 파는 것이 맞다”고 말해왔다. 웬만한 기업에는 팔지 않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기업이 들어올 경우 이번에는 팔겠다는 의지도 강하다. 매각 조건을 두고 탄력적으로 협상을 벌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채권단은 현재 구주 7.5% 이상, 신주 10% 이하의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이런 조건은 바뀔 수도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신주발행을 통한 인수방식을 허용하는 등 기업의 인수자금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만들어주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살 의지만 분명하다면 최대한의 ‘당근’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얘기다.
◇‘SKㆍSTX 2파전’…이번엔 새 주인 찾을까=SK나 STX가 인수 의향을 내비친 것은 사업다각화의 필요성 때문이다.
SK가 참여한 데는 최태원 SK 회장의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SK 고위 관계자는 “하이닉스 인수전을 보고 최 회장이 ‘새로운 도전을 해 보자’면서 인수를 강하게 독려했다”고 말했다. 또 “하이닉스 인수로 고용과 제조업 기반을 확실히 해 4대 그룹의 위상을 공고히 하는 한편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하이닉스의 기술과 SK의 정보통신(IT)산업 경영 노하우를 접목해 진정한 ‘글로벌 SK’로 도약한다는 복안도 만든 상태”라고 설명했다.
자금동원력도 충분하다. 이 관계자는 “SK텔레콤이 매년 2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고,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ㆍ4분기에만 1조2,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등 현금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M&A를 통해 성장한 STX그룹도 추가적인 사업다각화의 필요성이 인수전에 뛰어들기로 결정한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12위의 기업집단으로는 성장했지만 그룹 매출 가운데 70%가 조선과 해운에 편중되면서 그룹 성장을 위해서는 이를 뛰어넘을 또 다른 신사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STX는 특히 중동지역의 국부펀드를 파트너로 삼아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방안까지 밝혀 이미 상당기간 하이닉스 인수 문제를 심도 있게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