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 법칙’으로 유명한 황창규 KT회장의 새 브랜드는 ‘기가토피아’다. 황 회장은 11일 중국에서 열린 ‘모바일 아시아 엑스포’(MAE)에서도 ’기가토피아’를 전파했다. 그는 ‘연결을 넘어 가치창조, 기가토피아’라는 주제의 MAE기조연설에서 사물인터넷(IoT) 표준을 정립하고 데이터 공유 허브를 구축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쟁사인 SK텔레콤의 하성민 사장은 ‘ICT노믹스’를 내세운다. 하 사장은 MAE에서 각계 유명인사들을 만나며 ICT노믹스를 설파했다. 이에 앞서 이상철 LG유플러스 사장도 올해 초 ‘탈통신’을 선언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결같이 자신들이 새로운 미래 통신시장의 주역을 맡겠다는 장밋빛 청사진들이다.
그런데, 이들 3사가 장악한 시장의 현실은 딴판이다. 황창규 회장이 MAE 참석을 위해 출국한 지난 9~10일께 이통시장에서는 한동안 잠잠하던 보조금 전쟁이 재연됐다. 한 이통사에서 100만원이 넘는 리베이트를 판매점에 살포하자 시장에서는 출고가 80~90만원대의 갤럭시S5, G3를 거져주는 ‘공짜폰’이 등장했다.이를 감지한 경쟁사들이 뒤따라 리베이트를 살포한 것은 물론이다. 덕분에 당일 밤 서울 테크노마트 등 판매점 밀집지역과 온라인 시장은 후끈 달아올랐다.일부에선 출고가를 다 깎아주고 추가로 현금을 주는 ‘마이너스폰’까지 나왔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통 3사가 일제히 100만원 가량의 리베이트를 살포하면서 약삭빠른 몇몇 소비자들은 수십만원의 현금을 손에 쥐는 ‘폰테크(휴대폰 재테크)를 한 반면, 정직한 소비자들은 또 다시 한숨을 쉬어야 했다. 이 보조금 전쟁은 10일 오전까지 지속되다 한 이통사가 경쟁사의 불법 행위를 정부에 신고하면서 잦아들었다. ’치고 빠지기식 보조금 살포→경쟁사 대응→방통위 신고→상호 비방‘이라는 이통시장의 구태의연한 행태가 또 다시 반복된 것이다.
9~10일 일어난 보조금 전쟁은 기가토피아 등 이통사들의 그럴싸한 미래비전이 공허한 ’말잔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통 3사 CEO들이 겉으로는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첨병이 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뒤로는 소모적 보조금 경쟁에 혈안이 돼 있다는 얘기다. 이들에게는 정부조차 안중에 없다는 듯 하다. 방통위가 “이통시장 과열을 막겠다”며 ’사실조사‘에 착수한 게 지난달 29일인데, 불과 열흘만에 보조금 전쟁을 재연했으니 이들에게 정부란 어떤 존재인지 짐작할 수 있다. ’기가토피아‘ 등 솔깃한 미래 비전을 발표하면서 이통 3사 CEO들은 한결같이 ’고객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정말 고객을 위하고자 한다면, 당장 실현 불가능한 감언이설은 제쳐두고 치졸한 보조금 경쟁부터 그만두는 게 순서가 아닐까. 이통 3사 CEO들이 해외에서 말잔치를 벌이는 동안 제값 다 주고 휴대폰을 구입한 대다수의 ’호갱‘(호구고객)들은 밤잠을 설치고 있다./nhkimch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