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기회로 다가오는 융합과학

조광현 KAIST 바이오·뇌공학과 석좌교수


생명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까. 일반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줄기세포는 분화돼 특정 기능을 담당하는 세포로 변환된다. 정상세포는 유전자 손상으로 암세포로 변화될 수 있다. 그리고 젊은 세포는 분열을 거듭하며 점차 노화돼 간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연상태에서 모두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非可逆)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현상을 조절해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가능할까.

생명비밀 풀 시스템생물학 관심집중


최근 생명과학계의 흥미로운 발견들은 그러한 조절이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육종(肉腫) 암세포를 줄기세포의 특성을 가지도록 재프로그래밍한 뒤 지방세포나 골세포로 분화를 유도하면 과다증식하던 원래 암세포의 특성이 사라지는 것이 관찰됐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이 과연 어떻게 가능한 것이며 우리가 이를 제어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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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생명현상의 동작원리를 파악하는 것이 난해한 이유는 생명현상이 어느 하나의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수 생체분자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한 창발(創發)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러한 상호작용은 대부분 비선형(非線型)이어서 직관과 선형적 해석에 의존하는 기존 생명과학 접근으로 이해하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생명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간주하고 수학 모델링과 컴퓨터시뮬레이션 분석을 통해 숨겨진 동작원리를 찾아내고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는 생명과학과 정보기술의 융합학문인 시스템생물학이 전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모으며 급부상하고 있다.

생체시스템의 동적인 변화는 분화·암화·노화와 같은 일련의 비가역 현상을 창발적으로 만들어내는데 현대 생명공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해 이러한 현상 이면의 분자수준 변화를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세포의 동적인 상태변화는 구성분자들의 활동 정도를 축으로 나타낸 다차원 공간의 궤적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시스템공학의 대규모 컴퓨터시뮬레이션 분석기법을 활용하면 그 궤적이 특정 상태로 수렴하는 숨겨진 원리를 규명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를 인위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선진국과 견줄 수 있게 생태계 조성을

시스템생물학이 생명과학과 시스템공학의 경계에서 창발해 불가능해 보이던 생명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듯이 앞으로도 새로운 형태의 융합과학이 기존 학문의 경계에서 꽃피어나고 우리에게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기존 학문영역에서 한국은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큰 시간의 격차를 극복해야만 한다. 하지만 새롭게 피어나는 융합학문은 우리에게 선진국과 동등하게 출발하고 함께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융합학문이 자유롭게 꽃피울 수 있는 과학생태계를 조성하고 정부 차원의 지원을 마련하는 것이다. 시스템생물학과 같은 융합학문이 마음껏 창발할 수 있는 과학생태계가 조성되고 이를 지원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첨단 융합과학을 통해 생명이란 수수께끼의 베일을 벗겨 내고 마침내 생명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열쇠를 찾는 놀라운 순간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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