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LG전자와 특허괴물(Patent Troll) 인터디지털과의 소송에서 LG전자의 손을 들어준 것은 '국내 기업의 미국 대법원 첫 승소'와 '특허소송 만능주의에 대한 제동'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국내 기업은 미국 대법원과 인연이 없었다. 몇 번의 소송에서 대법원까지 갔지만 한 번도 승소판결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LG전자와 현대자동차. LG전자는 지난 2008년 대만 PC업체인 콴타사를 상대로 특허료 지급소송을 제기 했지만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미국 연방법원은 LG전자의 특허권을 인정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현대차도 지난해 11월 클리어워드컴퓨터스(CWC)가 미국지사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에서 대법원까지 갔지만 패소했다.
이런 가운데 LG전자 승소에 대해 한 미국 변호사는 "LG전자가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승소할 수 있었던 것은 계약서 작성과 법적 논리전개의 승리"라며 "국내 기업들도 미국 시스템에 잘 적응해 나가고 있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특허괴물의 특허소송 만능주의에 대해 경고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인터디지털은 2G, 3G 등 무선통신 분야에서 2만 개가 넘는 특허를 보유한 대표적 특허괴물이다. 가장 큰 고객은 한국기업으로 삼성전자가 내는 로열티가 인터디지털 전체 매출의 3분의 1이 넘는다.
인터디지털은 꼭 사용해야 하는 표준특허를 볼모로 삼아 다른 특허를 끼워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다. LG전자는 지난 2005년 인터디지털과 5년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인터디지털은 2010년 말 계약이 끝난 후 계약을 갱신할 때 상당한 금액을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인터디지털의 핵심 표준특허 중 일부가 노키아, 화웨이, ZTE 등을 상대로 한 특허침해 소송에서 무효 판결을 받은 후였다.
그럼에도 인터디지털은 LG전자에 상당한 금액을 요구하면서 의견차이가 좁혀지지 않았다. 그러자 중재 대신 곧바로 미국 ITC(국제무역위원회)에 소송을 제기했다가 이번에 대법원으로부터 철퇴를 맞게 된 것이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특허괴물 등 특허관리전문회사(NPEs)의 소송남용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움직임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NPE가 제기한 특허소송 건수는 2004년 이후 연평균 22% 증가했다. 동시에 NPE로부터 특허소송을 당한 기업 수도 2004년 634개에서 2011년 4,594건으로 7년 만에 7배 이상 늘었다.
NPE의 소송 만능주의가 심해지자 이에 대한 다양한 견제가 이뤄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NPE의 특허소송 승소율을 하락이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NPE의 특허소송 승소율은 1995~2000년 14%에서 2001~2006년 28%로 두 배 가량 높아졌다가 2007~2012년 26%로 하락했다. 반면 제조기업의 특허소송 승소율은 같은 기간 29%에서 33%, 38%로 꾸준한 상승세를 보였다.
미국 하원도 지난해 12월 특허소송 남용방지를 위한 '혁신법(Innovation Act)'을 통과시켰다.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선 어떻게 침해됐는지 명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피소 측이 승소할 경우 변호사 비용 등 소송비용을 배상할 수 있도록 했다. NPE의 무차별적인 특허소송 남발을 막겠다는 것이다.
대기업 특허담당자는 "미국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특허괴물의 묻지마 소송이 어렵게 됐다"며 "협상이나 중재보다는 소송을 앞세우는 전략에 제동이 걸림에 따라 특허괴물의 로열티 협상력도 상당히 약화될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