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서양 문화 500년사 유쾌한 뒤집어보기

새벽에서 황혼까지 1500~2000- 자크 바전 지음, 민음사 펴냄<br>뭐? 미국 독립전쟁이 반동적이라고?<br>사상·예술 키워드로 근대이후 '4단계 혁명' 구분<br>다양한 프리즘 통해 기존 통념 깨는 통찰 돋보여






서양 문화 500년사 유쾌한 뒤집어보기 새벽에서 황혼까지 1500~2000- 자크 바전 지음, 민음사 펴냄뭐? 미국 독립전쟁이 반동적이라고?사상·예술 키워드로 근대이후 '4단계 혁명' 구분다양한 프리즘 통해 기존 통념 깨는 통찰 돋보여 권홍우ㆍ편집위원 미국의 독립전쟁은 ‘혁명’이 아니다. 오히려 반동에 가깝다. 세금을 내기 싫어한 사람들의 ‘좋았던 옛날로 돌아가자’는 항거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명예혁명도 마찬가지. ‘명예’라는 명칭부터 부적합하다. 가톨릭을 포용하려는 제임스 2세의 관용정책을 막으려는 기득권자들의 쿠테타이자 반동일 뿐이다. 무혈혁명도 사실과 다르다. 네덜란드에서 건너온 오렌지공의 군대는 잔혹하게 아일랜드를 진압했다. 신간 ‘새벽에서 황혼까지 1500~2000’(민음사)의 일부다. 상식과 오류의 역사, 거꾸로 읽는 서양사 쯤으로 여기기 쉽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무엇보다 저자가 ‘자크 바전(Jacques Barzun)’이다. 1907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13살에 미국으로 이주한 역사학자로 20세기의 대표적 지성중 한 사람이다. 상하권 합쳐 1,498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는 통념을 깨는 통찰이 스며 있다. 루소를 보자. 그가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고? 아니다. 무수히 인용된 ‘사회계약론’ 서두의 ‘사람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서나 사슬에 묶여 있다’는 구절을 흔히 사슬을 끊으라는 메시지로 여기는 것도 틀렸다. 다음 문장은 오히려 사슬이 합법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쯤 되면 루소는 인간을 사슬에서 해방시키고자 한 사상가가 아니라 인간에게 사슬을 씌울 수 있을지 고민한 사상가로 들리겠지만 저자의 의도는 따로 있다. 다양한 사고와 관점으로 역사를 보라는 주문이다. 근대의 시작에서 현재까지 500년을 꿰뚫는 저자의 남다른 시각은 문화와 예술. 그런데도 여느 문화예술사나 통속사와 확연이 다르다. 사상가에서 과학자, 예술가을 삶과 생각을 통해 역사를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궁정과 궁정을 오가며 오늘날 외교관 역할을 맡은 음악ㆍ미술의 거장들의 궤적과 역사가 연결되는 대목이 흥미롭다. 가령 루벤스는 초상화를 얻으려고 그를 환대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와 스페인, 프랑스, 영국 왕들을 만나며 외교분쟁 해결사 노릇을 해냈다. 저자는 근대 이후를 사상과 문화 예술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4단계의 혁명으로 나눈다. 종교ㆍ군주(절대군주제)ㆍ자유주의ㆍ사회주의로 대별되는 혁명을 거쳐왔다는 것이다. 혁명의 원동력은 해방정신과 개인주의, 원시주의. 책에서는 문화가 해방정신 같은 키워드와 어떻게 맞물리며 역사를 이끌어왔는지가 장대하게 펼쳐진다. 악기의 발전과 산업혁명과의 관계, 19세기 이후 문학이 오락의 원천이자 개혁의 수단으로 작용한 점도 이채롭다. 20세기 사유의 뿌리를 제공했다는 리히텐베르크, 희곡 ‘피가로의 결혼’의 저자로 알려졌으나 미국 독립과 프랑스 혁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보마르세, 사회과학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시몽드 드 시몽디 등 잘 알려지지 않는 사상가와 천재들을 만나고 관상학이 두상인종학을 거쳐 인종차별론으로 발전하는 과정, 인류최대의 지적 탐험이었다는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을 음미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문명의 충돌’ 등을 옮겼던 이희재씨의 번역도 매끄럽다. 한국 나이로 올해 100살인 노학자의 평생이 담긴 책은 정교하고 다양한 프리즘을 가진 타임머신이다. 입력시간 : 2006/04/2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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