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은 총체적 난국의 상태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단이기주의로 인한 각종 분규가 끊이질 않아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기업들은 노사분규와 규제에 발목이 묶여 힘을 못쓰고 있고, 사회통합 기능을 해야 할 정치권 마저 파당적 이기주의에 몰두해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정부 또한 정책이 오락가락하며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 그 결과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락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손길승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정책입안자, 기업인, 근로자, 사회 각 분야 비정부단체(NGO) 등 모든 경제주체가 참여하는 `국민대토론회`를 제안했다. 당면한 위기를 타개하고 장기적 비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이 제안을 환영한다. 다만 이 토론회는 첨예한 이해당사자인 재계가 주도하는 모양새여서는 안될 것이다.
대타협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권을 초월하는 장기적 비전을 세워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며, 따라서 정치지도자들의 결단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또한 객관성을 가진 비정부단체들이 주도해야 노조 등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대타협의 전제는 위기의식의 공유다. 그러지 않으면 당사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 어렵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때와는 양상이 사뭇 다르다. 외환위기는 직접적인 처방을 통해 단기간에 회복을 할 수 있지만 국가경쟁력의 위기는 체질의 문제이기 때문에 일시에 회복하기 어렵다. 우리가 대타협을 통해 위기극복 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일랜드와 네덜란드가 좋은 본보기다. 1987년 봄, 제1야당 당수였던 앨런 듁스는 여소야대(與小野大)의 의회에서 “여당이 초당파적 경제정책을 세우고 경제 살리기에 전념한다고 약속하면 전폭적으로 협력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제안으로 탄생한 것이 그 유명한 `탈라 합의(Tallaght Agreement)`다. 이듬해 아일랜드는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돌파했고, 9년 뒤엔 2만달러, 15년 뒤엔 3만달러 국가로 뛰어 올랐다.
1982년 4년째 마이너스 성장을 겪고 있었던 네덜란드를 기사회생시킨 것은 `폴더(Polder) 모델`로 불리는 노사정 대타협이었다. 루트 루버스 당시 총리와 노동계 지도자였던 빔 코크(훗날 총리 역임) 노조 대표는 `권리 대신 의무` `요구 대신 양보``파업 대신 일자리`의 대원칙에 합의했다. 이후 네덜란드에서 극한 투쟁은 자취를 감췄다.
우리도 외환위기 당시 노사정대타협을 통해 합의를 일구어냈지만 아쉽게도 일과성에 그치고 말았다. 국민들이 공감하는 장기비전이 없었던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정치지도자들의 결단과 비정부단체들의 적극적인 동참, 노사의 동반자 의식이 함께 어우러질 때 위기극복 방안과 장기비전이 나오고 대타협을 이룰 수 있다. 그런 방향으로 토론이 이뤄지도록 토론 내용과 방법이 구체적으로 조율되기 바란다.
<조의준기자 joyjun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