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성장이냐 안정이냐' 거시정책 조합 딜레마… 시장신뢰 잃어

[대외 불안-갈피 못잡는 경제정책]<br>감세·물가·주택·금융 정책등 상충된 상황에 서로 이견까지<br>정치권 입김도 혼돈 부추겨<br>"정책 일관성 깨지지 않도록 우선 순위등 조율 노력을"


정부가 다양한 경제정책들을 조합하는 이른바 '폴리시믹스'를 놓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대내외 경제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다양한 거시정책의 기조가 서로 부딪히는가 하면 경제 이슈를 놓고도 정부 내에서 상반된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면서 시장의 신뢰를 잃고 있다. 특히 정치권이 거시정책 방향에 갖가지 훈수를 던져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정책조합의 혼선을 부추기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세계경제의 향방이 어느 쪽으로 튈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정부가 경제의 성장과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려고 하면서 불가피하게 빚어지는 현상이기는 하나 대외불안이 심화하는 시기일 수록 정책 혼선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정부의 감세정책 딜레마는 그 대표적 사례. 당초 정부는 기업의 투자 활성화 등을 유도해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높이고자 법인세 및 소득세에 대한 감세 원칙을 천명해왔지만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최근 감세시기를 조절할 수 있다며 한 발 물러섰다. 이는 소득세ㆍ법인세 감세시 초래되는 단기적 재정수입 공백을 메우기 위해 복지ㆍ사회간접자본(SOC) 등 다른 분야의 세출을 졸라매야 하는 것에 반대하는 여야의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22일에도 국회에 출석, 법인세 등의 감세 필요성을 거듭 주장해 정부 고위당국자 간 미묘한 입장 차를 드러냈다. 정부의 물가대책 역시 재정건전성 및 경제성장 정책과 상충될 소지를 안고 있다. 재정부는 추석 등을 앞두고 뛰는 물가를 잡겠다며 농축수산물을 비롯한 주요 수입물량에 대해 탄력세율을 확대 적용해 관세율을 최고 0%까지 낮춘 상황. 이에 따른 수조원대 세수공백은 당장 재정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울러 정부가 물가 잡기에 역점을 두겠다고 밝힐 때마다 외환시장에서는 수입가격 하락을 위해 금융통화당국이 원화 평가절상을 용인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되기도 했다. 이는 원ㆍ달러 환율 변동성을 키워 우리 경제성장의 밑거름인 수출산업에 악재를 드리우는 결과를 초래했다. 최근에는 정부의 주택ㆍ금융정책이 서로 부딪히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부가 전월세주택 공급을 늘리면서 주택경기를 살리기 위해 임대사업자 등에 대한 세제ㆍ금융지원을 약속하는 시점에 금융권에서는 은행들이 정부의 가계부채 억제책에 따라 신규대출을 자제하겠다고 나서는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했다. 거시정책의 또 다른 축인 한국은행 역시 딜레마에 빠졌다. 재정부와 한국은행은 물가안정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차관 및 부총재급으로 구성된 거시정책협의회를 7월부터 구성했지만 대외경제 여건이 급속히 악화하면서 물가보다는 외환 건전성 등 경제안정 운행에 방점에 둬야 할 처지다. 한은의 통화정책에서도 미묘한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연내 1~2차례 금리인상을 단행해야 할 상황이지만 미국과 유럽발 재정위기에 세계 경제의 더블딥 공포가 확산되면서 연내 금리인상은 물건너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심지어 한은이 금리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극단적 분석까지 나온다. 이에 대해 이태환 삼성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정부가 물가와 가계부채, 대외 경제여건 악화 등 급박한 이슈에 쫓기다 보니 정책을 내부적으로 조율하지 못하고 급하게 내놓는 것 같다"며 "정책의 상충을 사전에 조율하기 위한 정치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정부가 성장과 물가 중 어느 쪽에 보다 중점을 둘 것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배민근 LG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우리 경제의 건전성은 아직 수출을 통한 경상수지 흑자 기조에서 나오며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유지돼야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도 막을 수 있다"며 "이를 고려해 환율의 변동성을 최소화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와대와 여당 실세들이 사전에 정부와 조율되지 않은 정책을 깜짝쇼처럼 공개하는 것도 폴리시믹스의 혼돈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도 "청와대나 한나라당의 힘 있는 분들이 관계당국에 한마디 귀띔도 없이 민생정책이나 중소기업 정책을 대중에게 발표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며 "'제목'은 던졌으니 '내용'은 당국이 알아서 짜라는 식으로 급조하면 정부 재정정책의 일관성이 깨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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