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연구소들 "기업 기 꺾어 경제 어려워졌다"

'재벌논리 두둔 지나치다' 지적도

민간연구소들이 우리나라 경제 부진의 근본 원인을 유형 요소가 아닌 '신바람', '역동성', '자신감' 등 경제 주체들의 심리적 태도에서 찾고 있어 주목된다. 한마디로 외환위기 이후 강화된 규제에 기업들이 경영 의욕을 잃고 투자를 꺼리고 있으니 이 상황을 바꿔줘야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재벌계 민간연구소들이 '경제 침체 진단'을 빌미로 잇단 검찰 조사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대기업의 입장만 지나치게 대변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본부는 12일 '한국 경제 2%가 부족하다'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가 계속 무기력해지는 것은 노력한만큼 성과를 인정받는 '경제적 유인(인센티브)' 시스템이 무력화돼 자발적이고 열성적인 참여와 협동을 유발하는 '신바람'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연구원은 이어 "기업가의 공을 인정하지 않는 풍토라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누가 모험을 무릅쓰고 투자하려 하겠는가"라며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우수한 인력과 기술은 소용이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 경제가 국민총생산의 절반 규모에 이르는 시중 부동자금과 60개국 가운데 두번째로 높은 수준의 기술 경쟁력(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 2005년 평가)을 갖추고도 현재 '과잉규제'와 '징벌주의'라는 찬바람에 잔뜩 움츠려있다는 주장이다. 이 연구원은 또 올해들어 줄곧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투자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거론하며 이를 포함한 기업 관련 각종 규제를 철폐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최근 87년 이후 한국 경제 20년을 조명한 보고서에서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 약화가 외환위기 수습 과정의 상처와 후유증으로 경제적 활력과 역동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 연구소 역시 "2003년 이후 실시된 순환출자 억제를 통한 소유-지배권 괴리 해소 정책은 다른 나라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고, 기업 부채비율을 100%이하로까지 유도한 결과 보수적 투자와 수비적 경영이 자리잡게됐다"며 출총제를 비판했다. 또 한국 제조업의 부채비율이 현재 104%로 일본(145%), 미국(141%) 등을 크게 밑도는 사실을 소개하며 "외환위기 이후 구조개혁 정책이 한국기업의 도전적 요소를 제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본부장은 "외환위기의 근본 원인은 과도한 순환출자로 재벌기업들이 빚더미에 앉았기 때문"이라며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그 정도 규제도 없었다면 폐해가 더욱 심각해졌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본부장은 이어 "물론 수치적 목표 달성 위주의 관리에 다소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을 수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출총제나 부채비율 규제 등은 긍정적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현재 제도상으로도 기업들이 새로운 사업이나 기존 핵심사업에 투자하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재벌기업들은 공기업 매각 등에 자유롭게 참여하며 인수.합병(M&A)을 통해 무제한적으로 확장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 본부장은 "더구나 최근 재벌 총수들이 잇따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보고서들에 경제 위기의 원인을 기업 관련 정부 정책에 돌려 국민 여론을 유리하게 조성하려는 저의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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