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경기 성장세 탄탄환율 하락·증시 침체·정치불안등도 변수
먹구름으로 가득찬 세계경제와 달리 한국경제는 순항하고 있다. 적어도 지표상으로는 그렇다. 반대로 세계경제는 잿빛 전망 일색이다.
영국의 경제전문잡지인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이례적으로 '취약한 월가'와 '신음하는 경제'를 잇따라 다루기도 했다.
미국에서 터진 분식회계로 달러가 요동치고 금융시장이 신음한다는 게 주요 내용. 세계가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치던 미국기업들과 회계사들의 '거짓' 충격에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경기는 안정 기반을 차곡차곡 다지고 있다. 지표만 보면 희망을 갖기에 충분할 정도다. 그래도 불안하다. 과연 국내 실물경기는 제 궤도를 가고 있는 것일까.
▶ 경기 제 방향으로 가고 있나
아직까지는 안정성장의 궤도로 순조로운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통계청이 28일 발표한 지난 5월 산업생산이 나오기 전 경제전문가들의 견해는 경제전망이 '맑음'과 '흐림'으로 엇갈렸다. 그러나 5월의 성적은 회의론자들의 우려를 한꺼번에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정부의 재정투입에 의존해 불균형적으로 커왔던 성장의 내용에 많은 변화가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성장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수출과 투자가 되살아나며 균형성장의 디딤돌을 놓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5월 성적은 환율하락으로 수출여건이 나빠진 가운데 올린 것이어서 주목된다. 재고도 꾸준하게 줄고 재고조정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 거시경제팀장은 "예상보다는 속도가 처지고 있으나 실물경기는 내수와 수출이 균형을 이루며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하반기 예상 변수
문제는 앞에 놓인 걸림돌들이 적지않다는 데 있다. 지표상으로는 미국경제도 나쁘지 않다. 미 상무부가 최근 발표한 1ㆍ4분기 성장률 확정치는 6.1%.
전문가들의 예상치와 상무부의 5월 추정치였던 5.6%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였다. 뜯어보면 미국경제도 안정적인 회복세라고 말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복병이 튀어나왔다. 금융시장, 특히 분식회계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에 먹구름을 몰고 온 것.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박사는 "회계조작으로 인해 미국기업들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2000년 1조2,000만달러가 넘게 미국으로 유입되던 자금이 지난해에는 9,000만달러로 급감했고 올해는 지난해의 절반도 안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엔론 쇼크가 진정되지 않을 경우 미국경제가 불황으로 빠져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권 박사는 "경기 사이클상 미국경기는 3월을 저점으로 상승해야 하나 금융불안으로 방향을 못 잡고 있다"며 "미국의 상황이 오랫동안 나빠질 경우 우리에게는 경기둔화의 직격탄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율하락과 증시침체, 선거정국의 정치불안 등도 큰 걸림돌로 손꼽힌다.
▶ 엔론 쇼크 진정 여부가 관건
재정경제부는 하반기 우리 경제성장률을 6~7%로 전망하고 있다.
근본(펀더멘털)이 탄탄하기 때문에 외부 충격이 있더라도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성장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미국발 위기설에 내심 긴장하고 있는 표정이 역력하다. 26일 세계적인 장거리 전화회사인 월드컴이 38억달러의 분식회계를 한 것으로 드러나 전세계 주가가 폭락세를 보인 후에는 더욱 좌불안석이다.
정부가 손을 쓸 수 있는 방법도 제한적이다. 대책을 내놓더라도 약효는 미약하기 그지없다.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월드컵과 선거로 이완된 정치 사회분위기를 추스르고 기업회계의 투명성을 다지는 정도에 불과하다.
변양호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은 "미국의 금융ㆍ경제상황은 우리와 직결돼 있다"면서도 "그러나 미국 정부와 의회가 회계조작을 근절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에 엔론 쇼크는 조만간 치료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동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