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타임머신을 타고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영화 ‘백 투 더 퓨처’. 주인공 마티가 30년 후로 미래 여행을 온 날인 2015년 10월21일. 전 세계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킨 영화를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한 미국 ABC 방송의 간판 토크쇼. 마티역을 맡은 마이클 J. 폭스가 하늘을 나는 타임머신 자동차 ‘드로리안’을 타고 무대에 등장하자 중년의 관객들은 열광했다.
#2. 최고시청률 18%. 당당히 국민 드라마로 등극한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 응팔의 씬 스틸러 정봉이가 초등학생과 패싸움을 하고, 건달들에게 쫓기게 된 이유는 바로 보글보글로 더 잘 알려진 ‘버블버블’ 때문. 정봉이가 신들린 오락 실력을 보여준 방송 직후 SNS는 추억의 게임을 갈망하는 이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상사한테 쪼이고, 후배한테 치이며 삶이 팍팍하기만 한 3040대 중년들.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탓에 추억을 회상하는 것조차 커다란 사치로 인식되는 현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마티의 타임머신 ‘드로리안’을 빌려 타지 않아도 나만의 추억여행을 떠날 수 있다. 심지어 국내에 단 몇 대뿐인 ‘실물크기’ 드로리안을 만나는 행운까지 얻을 수 있다.
패미콤, 네오지오, 슈퍼겜보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추억의 게임’으로 추억을 플레이 할 수 있는 ‘키덜트의 낙원’ 레트로 게임 카페 ‘트레이더’를 찾았다.
시동을 걸면 원하는 곳으로 시간여행을 보내줄 것만 같은 드로리안을 지나 만나게 되는 양쪽 벽을 가득 메운 게임팩들. 어린 시절 신줏단지 모시듯 아꼈던 고전 게임기와 연결된 모니터에는 슈퍼마리오와 소닉 등 게임이 화면 한 가득 펼쳐진다. 카페를 찾은 사람들은 감탄사를 쏟아내며 분주히 손을 놀리며 즐거움에 빠져있다.
본격 ‘취향존중’ 구역
“레트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일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이 카페를 열게 된 계기였습니다. 동년배들에겐 추억의 게임에 다시금 빠져들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선물하고, 어린 친구들에게는 과거의 게임을 경험할 곳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한대윤 트레이더 대표의 말이다. 30대 중반인 그가 수집한 비디오 게임팩만 6,000개가 넘는다. 한국과 일본 등에서 출간된 게임 잡지는 커다란 책장이 모자랄 정도다. 구비된 게임기는 재믹스, 패미콤(패밀리컴퓨터), 슈퍼패미콤, 닌텐도64, 메가드라이브, PC엔진, 네오지오 등 7종이다.
트레이더의 최고 인기 메뉴는 당연히 ‘추억’이다. 음료를 주문하면 구비된 게임기로 마음껏 게임을 할 수 있다.
이색 데이트 장소라는 입소문을 듣고 방문했다는 한 커플은 “추억이라는 콘셉트가 독특하고 매력적이었다”며 “어릴 적에 즐겨 하던 서커스 게임을 하고 싶어 찾아왔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문을 연지 1년이 조금 지났지만 방문객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를 열 정도로 사업은 안정적인 궤도에 접어들었다.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열리는 레트로 게임 용품 바자회에서는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팔면서 서로 정보를 나눈다. 개업 초반 50명 남짓 모이던 방문객은 최근에는 200여명이 넘게 몰린다. 두 달에 한번 열리는 비디오 게임 대회는 프로 게이머도 참가할 정도로 인기다. 같은 취미를 마음 편하게 공유하려는 사람들의 아지트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했다.
추억에 투자하는 사람들
트레이더의 약진은 키덜트 시장의 성장과 맞닿아있다. 1980~90년도에 유년기를 보낸 이들이 성인이 되고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상품 구매에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국내 키덜트 시장 규모는 연간 5~7,000억원에 달한다. 그 중에서도 피규어·프라모델·드론 등 장난감 매출은 꾸준히 증가 추세다.
레트로 게임의 성장세도 눈부시다. 2012년 시작된 ‘레트로 게임 장터’는 첫 회 70명 남짓한 사람이 모였지만 최근 열린 9회 행사에는 무려 1,000여명의 사람이 몰렸다. 게임 소프트팩 가격이 2년 동안 3배가 뛸 정도로 거래가격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한 대표는 “구매력이 커진 3040 중년층이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추억의 물건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있다”며 “추억여행에 돈을 쓰는 어른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점차 바뀌고 있는데다 레트로 게임을 즐기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진은혜 인턴기자 ggoster08@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