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樂而不陷, 苦而不傷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파문은 불교의 화엄경(華嚴經)에 나오는 ‘낙이불함 고이불상’(樂而不陷, 苦而不傷)의 의미를 절실히 곱씹게 만든다. (좋은 일에) 즐거워하되 너무 빠지지 말고, (나쁜 일에) 괴롭고 힘들어도 그 도가 지나쳐 다치지 말라는 뜻이다. 황우석 사태의 시작과 끝도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황우석사태 遠因은 ‘쏠림현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사태를 두고 ‘한국이 국가적 우울증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온 국민이 혼란에 빠져 허탈함과 상실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니 그런 평이 실감난다. 왜 그렇게 됐을까. 가장 큰 잘못과 책임은 황 교수와 논문조작 관련자들에게 있다. 논문의 제2저자인 노성일 이사장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지나친 ‘쏠림 현상’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사태의 원인(遠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황우석은 영웅이었다. 영롱이부터 세계줄기세포허브 설립으로 이어진 연구는 한국을 세계가 주목하는 생명공학 강국으로 만들었다. 국민들은 거기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한국은 세계무대의 주연이었던 적이 없었다. 늘 눌려 지냈고 선진국을 부러워하며 따라가기 급급했다. 오랜 세월 이렇게 지내면서 가슴에는 한(恨)이 쌓여갔다. 그런데 우리도 드디어 세계최고를 갖게 됨으로써 맺혔던 응어리를 풀고 한껏 자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천문학적으로 추산되는 연구의 경제적 효과는 가슴을 더욱 설레게 만들었다. 일부에서는 우리 국민 전체가 손 하나 까딱 안하고 몇 년 동안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라고도 했다. 그러니 열광할 만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어야 했는데 너무 지나쳤다. 모두가 황 교수에 함몰했고 어느 순간부터 그에 관한 일은 성역이 됐다. 그의 말과 행동은 아무 의심 없이 그대로 진실로 받아들여졌다. 그에 대한 비판은 매국행위로 여겨질 정도였다. 시비는커녕 검증 이야기를 꺼낼 엄두조차 내기 힘든 게 저간의 사회 분위기였다. 즐기되 빠지지 말았어야 했는데 모두가 한쪽으로만 쏠려버렸고 결국 이게 국가적 비극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여기에는 언론이 큰 몫을 했다. 여론을 오도하지 않았나 언론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최악 상황에도 주저앉지 말아야 줄기세포 유무에 관계없이 논문조작만으로도 한국 과학계의 위상추락은 불가피해졌다. 앞으로 한국 과학자들의 논문이나 연구성과에 대해 세계과학계는 돋보기를 들이댈 가능성이 커졌다. 우리 과학자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이공계 기피 현상도 더 심화될 수도 있다. 세계줄기세포허브 운영도 차질을 빚을 것이고 미래 우리 경제를 먹여 살릴 핵심산업의 하나인 생명공학산업의 앞날에도 험로가 예상된다. 만일 맞춤형 배아복제 줄기세포 자체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 그 후유증은 훨씬 더 심각할 것이다. 그래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조사와 검증과정에서 맞춤형 배아복제 줄기세포의 존재와 그 원천기술을 갖고 있다는 점이 사실로 입증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난치병 환자와 가족들은 물론이고 국가위신을 위해서도 그렇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도 염두에 둬야 한다. 다만 그런 경우라도 그대로 주저앉지는 말자. ‘樂而不陷을 못했으니 苦而不傷의 마음가짐이라도 가져야 한다. 처지가 어렵게 됐다고 거기에 빠져 허우적대지 말고 이전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그것을 이겨내려는 각오와 자세가 필요하다. 애초부터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게 가장 좋았겠지만 이왕 벌어져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더 큰 발전을 위한 성장통으로 여기고 분발해야 한다. 그 대가가 너무 크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사건이 한국 과학계의 자기검증 및 자기정화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일 수도 있다. 조사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거기에 너무 매몰되지는 말자. 그래야 국가적 우울증과 비극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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