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사모님'의 전유물이었던 고가 미술시장에 젊은 '회장님'이 등장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16일 미술계에 따르면 과거 일부 기업에서 비자금 은닉이나 투자 목적으로 사모님이 폐쇄적으로 작품을 구입하던 시장에 창업주 2,3세들이 최고경영자(CEO)로 일선에 나서면서 회장님의 젊은 취향이 적극 반영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어릴 때부터 풍부한 문화적 체험을 해온 덕분에 성장해서도 예술에 대한 안목이 높아 직접 작가를 발굴하고 후원할 뿐 아니라 예술적 취향이 경영에도 적용되고 있다. 재계의 대표적인 예술 애호가인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은 개념미술가 배영환씨를 후원, 중고 컨테이너를 재활용한 '움직이는 컨테이너 도서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컨테이너를 개조해 이동식 책방ㆍ놀이방ㆍ노인회관을 만드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배씨가 참가하자 최 회장은 자사의 중고 컨테이너를 제공했다. 기업의 특화된 작가 후원인데다 문화소외 지역에 대한 사회 공헌까지 이뤄냈다. 최 회장은 작고한 남편 조수호 전 회장의 유지인 예술후원을 통한 사회공헌을 위해 양현재단을 설립하고 지난해 국제미술상인 '양현미술상'을 제정, 운영하고 있다. 김정완 매일유업 부회장은 개념예술가들 가운데 양혜규ㆍ김소라씨 등을 후원하고 있다. 또 도시화ㆍ산업화를 주제로 작업하는 사진작가 백승우씨의 작업장소로 매일유업 공장을 제공하는 공동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김 부회장은 예술적 안목과 실험정신을 '감성경영'으로 연결시켰다. 떠먹는 요구르트를 컵 형태에서 단지형으로 바꾼 신제품 '바이오거트 퓨어' 용기 디자인도 그의 아이디어다. ㈜경방이 지난 9월 서울 영등포에 개점한 타임스퀘어에는 김담 부사장의 아이디어가 녹아 있다. 서도호ㆍ윤동구ㆍ이불ㆍ이수경ㆍ지니서 등 설치미술가들의 작품은 평소 공공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김 부사장이 결정한 것이다. 고가의 작품을 수장고에서 썩히지 않고 대중과 호흡하면서 예술을 통한 '공간의 가치상승'을 실현한 사례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전시기획을 맡은 김선정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딸이며 김 부사장과 동갑내기 친구로 두 사람은 평소에도 예술에 관한 견해를 나누며 공공미술과 예술적 사회환원에 관심을 가져왔기에 이번 프로젝트가 성사됐다.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문화예술 최고경영자과정)는 "경영학이나 공학을 전공해 다소 경직될 수 있는 CEO들에게 최근 기업의 화두인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돼 경영의 유무형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