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안타까운 심정/이강두 신한국당 의원(로터리)

경중의 차이는 있겠으나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안타깝게 느끼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짝사랑하는 여인이 내 마음을 몰라줄 때도 그랬고, 내가 낳은 자식이 애비의 심정을 몰라줄 때도 그랬다. 나는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 결과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을 때나, 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일이 그릇된 길로 진행될 때도 무력감을 느끼고 자탄에 빠진다.불철주야 온 정성을 다해 해놓은 일을 상대가 몰라줄 때도 섭섭하기 짝이 없다. 도둑의 누명을 쓰고도 결백을 증명할 수 없을 때는 안타까움을 넘어 처참한 심경이 된다. 30년 이상 경제정책 법안에 관여해 온 나로서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한두번 있었던 것이 아니지만 지난 연말 국회를 통과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만들고 조정하는 과정에 참여한 나로서 요즘처럼 가슴저리게 안타까웠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모든 과정을 거쳐서 만든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조차 못하게 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모든 사물은 여러 측면이 있고 복잡하다. 또 누구나 자기 나름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대화하고 의논하여 지혜를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법률안을 국회에 상정하여 심의하고 대안을 저울질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도 이런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학생이라도 알 만한 이런 원칙을 팽개치고 국회 상정조차도 못하게 몸으로 막고 있었으니 어떻게 하는 것이 좋았을까. 반대를 하면 대안이라도 있어야 한다. 동료로서도 부끄럽고 우리를 지도자로 쳐다보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도 할말을 잃었다. 또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우리가 어느 한쪽의 편을 들었다고 매도하는 것이다. 단언하건대 누굴 편들고 당리당략을 위해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오로지 국가의 장래와 민족의 미래를 생각한 우리의 충정만큼은 순수하고 대국적이었다. 부처 눈에는 만물이 부처로 보이듯 자기 기준과 자기 욕심으로만 사물을 보기도 한다. 사람들은 목적의 손익만 계산에 넣고 장기적인 득실은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국민의 복리와 국가장래를 책임지고 있는 집권 여당은 지금 당장 입맛이 쓰고 비록 고통이 함께 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국가 발전을 위하여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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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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