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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국제 금융시장의 화두는 단연 '아베노믹스'다. 엔화가치를 끌어내리기 위한 아베 신조 총리의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으로 엔화가치는 100엔 붕괴 초읽기에 들어가고 일본 증시는 4년여 만에 1만3,000의 벽을 훌쩍 뛰어넘었다. 외신들은 20년간의 정체기를 겪은 일본이 마침내 성장궤도로 올라설 터닝포인트를 맞이했다는 분석을 조심스럽게 내놓기 시작했다.
일본 경제 회생의 가능성과 함께 부활 프로젝트의 중심에 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뜨거워질수록 아베 총리와 오버랩되는 인물이 있다. 지난 2001년부터 2006년까지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으며 자민당 정권의 마지막 전성기를 누렸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다. 특히 취임 후 3개월이 지나도록 70%를 넘는 높은 지지율은 압도적인 국민적 지지 속에 이례적인 장기 집권에 성공했던 고이즈미 총리의 인기를 연상시킨다.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가 장기집권에 성공한 고이즈미 전 총리의 캐릭터를 따라하며 '제2의 고이즈미'의 이미지를 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싱크탱크인 '신외교이니셔티브'의 사루타 사요 사무국장은 최근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금융완화, 재정확대, 성장 전략이라는 세가지 축을 내세운 아베노믹스의 '세개의 화살'은 고이즈미 전 총리의 슬로건 정치와 흡사하다"고 평가했다. 아베 총리가 경제정책의 '세 개의 화살'개념을 거듭 강조하는 것이 과거 고이즈미 총리가 틈만 나면 "일본을 바꾸자""자민당을 바꾸자""성역없는 구조개혁"등의 구호를 외치며 국민들에게 호소했던 방식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산케이신문은 지난 6일 아베 총리가 일본 전통연극인 가부키를 관람한 것을 두고, 자민당 내부에서 "장기 집권한 고이즈미를 따라 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꼬집었다. 휴일이면 골프를 즐긴다는 아베 총리와 달리 고이즈미 전 총리는 가부키의 열렬한 팬이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젊은 유권자들과 수시로 접촉하는 점도 고이즈미 전 총리가 225만명의 독자를 거느린 이메일 뉴스레터를 꾸준히 발간하며 소통에 나섰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아베 총리를 고이즈미 전 총리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2000년대 초 일본을 휘저은 '고이즈미 개혁'과 2013년 일본 경제의 흐름을 뒤바꿔 놓은 '아베노믹스'의 유사성이다.
세부 내용 면에서는 규제완화와 구조개혁을 통한 성장을 골자로 하는 고이즈미 개혁과 재정지출 확대ㆍ금융완화 등 돈 풀기로 경기 부양을 이끌려는 '아베노믹스'는 분명 상이한 면이 있다. 하지만 기존 상식의 틀을 깨는 과감한 정책과 이를 반영하는 가파른 엔저, 인위적인 엔저 유도를 용인하는 지정학적 상황, 일본경제 부활에 대한 기대감에 힘입은 증시 폭등까지 '아베노믹스'는 여러 면에서 고이즈미 전 총리의 발걸음을 답습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특히 최근 일본 주식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들의 집중적인 매수세와 빠르게 진행되는 엔화 약세가 고이즈미 집권기인 2003년의 데자뷰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당시 일본 경제가 거품 붕괴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장기 디플레이션과 엔고, 증시 침체로 허덕이던 상황에서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은행과 손 잡고 35조엔에 달하는 엔화 매도개입을 단행했다. 그 해 3월 발발한 이라크전 때문에 동맹국의 지지가 필요했던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이를 묵인했다. 고이즈미는 미국의 이라크전에 누구보다도 먼저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엔저 효과를 증폭시키기 위한 금융완화도 진행됐다. 2003년 3월 임기가 만료된 일본은행의 신임 총재를 물색하던 고이즈미 총리는 디플레이션 대책을 적극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인물을 물색, 후쿠이 도시히코 당시 부총재를 총재로 임명했다. 후쿠이 총재는 취임 직후부터 당시로서는 제법 '화끈한'추가 양적완화 조치로 화답했다.
금융완화 영향과 고이즈미 개혁에 대한 기대감에 시장은 크게 반응했다. 도쿄증시의 닛케이지수는 2003년 4월 7,600대에서 2006년 말에는 1만7,000대까지 치솟았다. 경제지표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2004년 1월 일본 경기의 '회복'을 처음 언급한 고이즈미 총리는 퇴임을 앞둔 2006년 디플레이션 탈출을 공식 선언했다.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전개되는 상황은 고이즈미 정권 당시를 충실하게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기대와 증시 급등, 20년 만의 디플레이션 극복에 대한 기대감까지 현재 시장 상황은 당시를 옮겨놓은 듯하다.
하지만 당시 고이즈미 개혁에 대한 기대는 당사자의 퇴임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공공부문의 대대적인 개혁을 내걸었던 고이즈미 개혁은 우정민영화에 대한 집착으로 변질됐고, 그나마 퇴임 이후에는 빠르게 퇴색됐다. 작은 정부와 재정 건전화라는 정책 목표도 끝내 이루지 못했다. 가파르게 치솟던 주가는 207년 이후 해외경기가 악화하자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디플레 탈출 선언 후 7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여전히 디플레이션과의 전쟁 중이다.
이미 일각에서는 최근 일본의 금융완화가 초래한 엔저와 주가상승이 '거품'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아베노믹스가 실패한 고이즈미 개혁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단기간에 시장에 거품을 끼게 하기보다는 실물경제 회복을 동반하는 정책적 지속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고이즈미 개혁과 마찬가지로 각광과 논란 속에 시장을 흔들고 있는 '아베노믹스'가 고이즈미 개혁과 같은 운명을 밟게 될 지, 진정한 일본경제 회생을 이뤄낼 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