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한국판 오일달러] <중>황금알을 낳는 거위 '地上油田'

無에서 有로…<br>누룽지가 쌀밥된다… "고도화설비 늘려라"<br>값싼 벙커C유 다시 분해해 비싼 경질유 생산<br>S-OIL·GS칼텍스등 고도화비율 20% 넘어서<br>선진국보다는 아직 낮아 추가 증설에 열올려

국내 정유업체들이'지상유전' 이라 불리는 고도화설비 증설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가동된 GS칼텍스의 제2중질유 분해시설은 하루 6만배럴의 벙커C유를 분해해 휘발유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한다.


“다 타버린 누룽지에서 흰 쌀밥을 뽑아내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은 올해 초 인천공장 내 고도화설비(중질유분해시설) 신설계획을 밝히며 ‘누룽지’와 ‘쌀밥’에 비유해 고도화설비 증설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유업체들은 왜 이처럼 고도화설비 증설에 매달리는 것일까. 원유정제 과정과 유종별 국제시세를 돌아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통상 정유사들이 해외에서 원유를 들여와 정제하면 전체의 60% 정도는 휘발유와 경유ㆍ등유 등 부가가치가 높은 경질유가 생산되고 나머지 40%는 벙커C유로 남는다. 문제는 벙커C유 가격이 원유보다 낮다는 데 있다. 지난 3일 현재 두바이유 원유의 싱가포르 현물시장 국제시세는 배럴당 60.44달러지만 원유를 정제해 나오는 벙커C유는 배럴당 41.39달러다. 정제 과정을 거쳐 나온 벙커C유가 원유보다 20달러 가까이 싼 셈이다. 벙커C유는 환경 문제 등으로 세계적으로 수요가 줄어 헐값이 된 지 오래다. 때로는 벙커C유에서 발생한 역마진 때문에 휘발유ㆍ경유 등 경질유에서 발생한 마진이 모조리 상쇄돼 정유사들의 상압정제(단순정제) 마진이 마이너스가 되기도 한다. 공장을 돌리고도 손해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장치가 고도화설비다. 고도화설비는 벙커C유를 다시 분해해 여기서 휘발유와 경유ㆍ등유 등 경질유를 생산하게 된다. 이런 이유에서 고도화설비는 ‘지상유전(地上油田)’으로 불린다. 정유사의 미래가치를 결정짓는 핵심설비가 바로 이 고도화설비다. 이 때문에 국내 정유사들은 대대적인 고도화설비 증설을 통해 수익성을 올리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누룽지에서 밥을 만든다=고도화설비는 정유사의 미래가치를 결정하는 핵심 설비로 통한다. 벙커C유의 용도가 선박연료ㆍ발전연료 등으로 제한되고 세계 석유제품 시장이 경질유 위주로 완전히 재편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 국내 정유사들도 ‘안 만들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 벙커C유를 다시 분해해 경질유를 얻기 위한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고도화설비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단순 정제시설을 짓는 것과 비교하면 10배 이상의 비용이 들어 보통 조(兆) 단위의 투자가 필요하다. 게다가 핵심 부품의 경우에는 일본 등 선진국의 몇몇 회사만 제작할 수 있어 완공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고도화설비는 한번 지어놓으면 지속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다. 석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특히 지난해부터 올해 사이 벙커C유 값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경유 값이 이상 급등해 고도화설비 마진이 크게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정유업체들 증설 러시=현재 국내 4사 가운데서는 S-OIL이 가장 높은 고도화설비율을 자랑한다. S-OIL은 총 18억달러를 들여 지난 1996년과 1997년 하루 7만5,000배럴 규모 수첨분해(하이드로크래커) 방식의 고도화설비와 촉매분해(FCC) 방식의 고도화설비를 잇달아 완공하고 현재 25.5%의 고도화설비율을 자랑하고 있다. 때문에 S-OIL은 세계적으로도 선제적 투자를 통해 수익률이 높은 정유사로 정평이 나 있다. 현재 S-OIL은 저급 벙커C유를 단 한 방울도 시장에 밀어내지 않는다. 대부분은 고도화설비 원료로 투입하고 나머지는 탈황처리를 거쳐 친환경 벙커C유로 만들어 수출하고 있다. S-OIL은 1991년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가 대주주로 들어오면서 고도화설비 투자 결정이 이뤄졌고 IMF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에 설비를 완공했다. S-OIL의 한 관계자는 “경유가격과 벙커C유 가격 차이가 7~8달러 이상 벌어지면 고도화설비의 수익성이 발생하는 구조였는데 당시에는 그걸 못 믿어 국내 업체들이 투자를 머뭇거렸다”면서 “그러나 올 들어서는 경유와 벙커C유 가격 차이가 70~80달러까지 벌어지며 대박을 터뜨렸다”고 설명했다. GS칼텍스는 1992년 하루 9만3,000배럴 규모의 촉매분해 방식 고도화설비 준비를 시작해 1995년 준공한 뒤 지난해에는 총 1조5,000억원을 투자한 하루 6만배럴 규모의 수첨분해 방식 고도화설비를 완공해 고도화 비율을 22%까지 끌어올렸다. SK에너지는 올해 울산공장에 하루 6만배럴 규모의 촉매분해 방식 고도화설비를 완공하고 기존 시설에 더해 하루 고도화 생산량을 16만2,000배럴로 늘렸다. SK에너지는 고도화 처리량 자체는 국내 최대지만 상압정제량이 워낙 많은 탓에 고도화 비율이 14.5%선으로 다소 낮은 편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국내 정유업체가 지난 10여년간 고도화설비 투자를 꾸준히 진행했지만 아직 선진국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다. 업계 자료에 따르면 올 1월1일 기준으로 미국 76.3%, 독일 53.7%, 영국 50.9%, 일본 39.8% 등의 고도화율을 나타내고 있다. 국내 업계도 증설이 필요한 상황이다. GS칼텍스는 이미 6월부터 고도화설비 증설을 시작했다. 이번 고도화 프로젝트는 하루 6만배럴 규모의 수첨분해 방식과 하루 5만3,000배럴의 촉매분해 방식을 동시에 짓는 국내 업계 사상 최대의 대역사다. GS칼텍스의 한 관계자는 “오는 2010년 완공을 목표로 총 투자비를 3조원 이상 투입하고 공사기간 동안 연인원 300만명을 고용해 국가 경제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면서 “완공 이후에는 하루 고도화 처리능력 26만6,000배럴이 돼 고도화 규모와 비율 모두 국내 선두가 된다”고 설명했다. SK에너지는 인천공장도에 하루 4만배럴 규모의 수첨분해 방식 고도화설비를 짓기로 4월 결정했다. 인천공장에 처음 생기는 고도화설비는 총 1조5,000억원이 투자돼 2011년 완공할 계획이며 완공 후 SK에너지의 고도화비율은 17.6%까지 올라간다. S-OIL도 현재 잠정 중단된 충남 대산 신공장 프로젝트가 재개될 경우 상압정제설비 외에 고도화설비를 추가로 지을 방침이다. SK에너지의 한 관계자는 “고도화설비 증설은 막대한 자본이 투자되는 프로젝트이지만 기존의 단순 원유정제 방식만으로는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들다”면서 “고도화설비는 원가부담을 줄여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돌려준다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