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조급한 추진… 「각론」 부실 노출/금융개혁 정부안 확정

◎“통화정책 물가중심으로만” 지적/감독기구 통폐합 실익기대 의문정부가 16일 확정 발표한 중앙은행제도 및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은 총론에선 명분이 뚜렷하나 입안기간이 너무 짧아 각론상에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금융개혁위원회안을 토대로 마련된 정부안은 ▲통화신용정책에 대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해 물가안정을 달성하고 ▲은행, 증권, 보험 등 3개 감독기구를 통합해 금융의 겸업화 추세에 대응하는 한편 금융산업 및 시장의 부실화를 사전에 예방한다는 것을 취지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정치권이나 정부의 입김을 차단해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을 위해 통화신용정책을 펴도록 하고 금융산업간 경계가 없어지고 개방화가 가속화되는 추세에 대응해 감독체계를 효율화해야 하는 최근 상황이 이번 개편안 취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총론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이번 개편안이 우리나라의 경제상황과 대선을 앞둔 정치상황에 적합한 지가 의문이다. 우선 중앙은행에 통화신용정책의 전권을 주는 부문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일단 이번 안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실효성있게 보장하는 지는 접어두자. 중앙은행 독립의 근본취지는 물가안정이며 통화정책의 최우선목표를 물가안정에 두는 것이다. 경제가 일정수준 발전하고 사회보장제도가 갖춰진 선진국에서는 물가안정이 최우선이다. 물가만 안정되면 국민들의 기본생활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덩치를 키워야 하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통화신용정책의 목표를 물가중심에 국한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만만찮다. 고도성장신화가 끝나고 구조조정을 위한 정리해고가 불가피한 것으로 용인되는 상황에서 자칫 금통위의장과 위원들은 성장, 고용 등 다른 거시지표를 도외시하고 물가안정만을 위해 돈줄을 쥘 가능성도 있다. 장마만 오면 물가가 뛰는 현실에서 물가를 둘러싼 중앙은행과 정부의 책임떠넘기기 공방도 치열해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 두번째는 금융감독기구의 통합 문제다. 정부는 명분으로 금융겸업화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현재 상황에선 금융겸업화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은행에 대한 소유제한, 진입제한 때문에 현실적으로 증권·보험의 은행 진출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감독기구 통폐합에 따른 실익이 적다. 강부총리도 밝혔듯이 현재 3개감독기구의 인원을 한명도 줄이지 않고 그대로 통합감독원으로 옮길 예정이다. 구체적인 개편안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기존에 하던 일을 한곳에 모여 다른 사무실에서 할 뿐이라는 것이다. 도리어 장관급기구와 공무원들로 충원되는 사무국만 늘어나는 셈이다. 이는 작은 정부 시책에도 역행한다. 은행감독원 등 감독기구 임직원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구체적인 복안없이 적당히 타협안을 내놓은 셈이다. 금융자율화와 개방으로 점증하는 금융 불안정성에 대응하기 위해 감독방식을 선진화해야 한다면 그에 걸맞은 금융산업개편이 전제되고 감독체계개편도 실효성을 갖춰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총론이 긍정적인데도 불구하고 이같은 문제점이 나오게 된 이유는 이번 방안의 결정과정에서 금개위, 한은, 재경원 등 이해당사자의 감정이 맞선 가운데 의견수렴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채 시간에 쫓겨 결론을 맺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강경식 부총리, 이경식 한은총재는 김인호 경제수석비서관, 박성용 금개위위원장 등과 함께 개편안을 협의하면서 고작 두번의 밀실 회동을 통해 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히고 있어 석연치 않은 느낌을 주고 있다. 더욱이 정치적으로 임시국회 개회가 여전히 불투명하고 정부도 관련법률안의 국회 제출이 여당 대권후보 선출이 임박한 7월중순께나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어 이번 개편안이 과연 현정부 임기내 실현될 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실정이다.<최창환 기자> ◎한은 등 각계반응/한은 “한마디로 개악” 혹평/은감원 “이행과정서 숱한 부작용 나올것” 한국은행은 정부의 중앙은행제도 및 금융감독기구 개편안에 대해 「한마디로 개악」이라며 강력 반발. 한은은 16일 부서장회의 및 기자회견을 갖고 12인 비상대책위를 구성, 정부안 관철을 적극 저지키로 결의. 한은 집행부 임원은 『금통위와 한은을 분리하는 것은 이제까지 전혀 논의조차 되지 않은 사항』이라며 『머리와 몸통을 분리하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반문. 은감원 임원들은 『감독원 분리·통합은 모양만 그럴 듯하지 실제 이행과정에서 숱한 부작용을 양산하게 될 것』이라며 회의적인 반응. 한은 노조는 『관치금융을 항구적으로 제도화하려는 기도에 맞서 전직원 총사퇴와 전면 총파업 돌입도 불사하겠다』며 전의를 다지는 모습. 특히 정부의 금융개혁안을 지지하고 나선 이총재를 「한은독립과 관치금융 청산을 통해 경제민주화를 이루려는 국민적 염원을 배신하면서 정부의 금융경제 장악음모에 충실한 하수인이자 나팔수임을 자임한 인물」로 규정하는 등 적대적 감정을 내보이며 즉각 사퇴를 촉구하기도. 한은은 그러나 구심점을 모으지 못하고 임원과 부서장, 노조와 비노조원이 각각 따로 움직여 아직은 전열정비가 안된 모습. 이날 상오 직원비상총회가 열렸으나 노조가 『우리들과 상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몸싸움까지 벌이며 원천봉쇄, 내부갈등만 증폭. 한편 은행권은 한은의 애타는 심정에도 아랑곳 없이 정부의 금융개혁안에 대해 「관심없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속마음으론 환영하는 분위기가 완연.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감원은 그동안 각 은행 검사부에서나 할 일들에 매달리는 등 업무처리과정에서 은행들의 인심을 잃었다』며 쌓여온 불만을 표출하기도. 이 관계자는 『은행장 인사에 대한 관치금융 배제 및 은행에 주인을 찾아주는 소유구조 개편과 관련해서도 한은과 은감원은 아무런 역할을 못했다』며 앞으로 출범할 금융감독위원회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반응. 보험감독원 역시 각급 부서장 및 직원회의를 잇따라 개최하는 등 하루종일 뒤숭숭한 분위기. 특히 1백여명의 과장급이하 공채직원들은 이날 하오 긴급모임을 갖고 『정부의 감독기능 통합조치는 분리감독의 역사적 배경과 금융권간 소비자보호문제 등을 도외시한 무책임한 결정』이라며 앞으로 모든 수단을 강구해 강력 대처해 나갈 것을 다짐. 보감원 노조는 이날 1층 후문로비에 「금융감독원 통합 결사 저지」라는 플래카드를 내건데 이어 노조간부들이 무기한 철야농성에 들어가는 등 투쟁수위를 점차 높여나가기로 결정. 보험업계는 이같은 보감원의 정서를 의식, 감독원통합에 대해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증권감독원은 금융감독체계 개편과 관련, 부서장들과 노조가 『3개 감독기관을 통합해 하나의 감독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은행, 증권, 보험산업의 특수성을 무시하는 비효율성을 초래할 뿐』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증감원은 3개 감독기관을 물리적으로 통합할 경우 감독기관별로 전문적 지식과 인력을 통해 감독 및 규제업무가 수행되던 전문성 결여에 따른 감독업무의 비능률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당초 금융감독체계 논의의 시발은 은행감독권을 둘러싼 재경원과 한국은행의 해묵은 논쟁에서 비롯됐는데 엉뚱하게 보험, 증권감독기구의 통폐합까지 이어진 것은 본질을 이탈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증권업계는 이번 정부가 확정한 금융감독 체계 개편안은 증권시장의 현실을 외면한 졸속정책이라고 혹평하고 있다. 증권업협회는 『직접 금융시장의 기능이 시간이 흐를수록 높아져가고 있다』며 『금융감독 체계는 은행이나 보험과 달리 증권은 기존의 체제를 유지한 채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할 것』이라고 평가했다.<정경·증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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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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