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4년 6월 과테말라에 미 중앙정보국(CIA)가 지원하는 군사쿠데타가 발생, 합법적인 정부가 전복되고, 수백명이 죽는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이 쿠데타에는 미국 바나나 업자들의 이해가 걸려 있었다. 45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또다시 카리브해 지역의 바나나를 거래하는 치키타·도울 푸드 등 과일 중개상을 위해 무역전쟁을 벌여 승리했다. 치키타사의 대주주 칼 린드너씨는 지난 96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재선과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후보들에게 상당액의 자금을 지원했었다.대선 및 상하원 선거를 한해 앞두고 미국이 보호무역주의 물결에 휩싸이고 있다. 농촌과 공업지대를 지역구로 하는 의원들은 정당을 떠나 외국에서 들어오는 값싼 수입품을 규제하자는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유럽과의 바나나 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보호주의 기조는 한층 강화할 전망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은 6일 유럽연합(EU)과의 바나나 분쟁에서 세계무역기구(WTO)가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판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USTR은 성명에서 『EU의 바나나 차별 수입이 WTO 규정에 위배된다는 판정이 재확인됐다』면서 『EU가 이번에도 불복할 경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USTR은 이번 소송의 대가로 1억9,140억 달러에 대한 유럽산 제품에 대해 100% 보복관세를 물리기로 하고, 며칠내에 대상 품목을 발표할 계획이다. 미국은 이미 유럽국가들이 미국산 쇠고기에 성장호르몬 함유를 이유로 수입금지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대해서도 보복관세를 물리겠다고 공포한 바 있다.
보호주의 기조가 강한 곳은 워싱턴 정가다. 하원 본회의는 지난달 철강 수입물량을 30% 줄이기 위해 쿼터제 채택을 내용으로 하는 법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다. 클린턴 대통령과 데니스 해서트 하원의장은 이 법안이 WTO의 자유무역주의 이념에 위배된다며 반대했으나, 대통령 거부권을 무산시킬 수 있는 3분의2 이상의 하원의원들이 법안을 지지했다. 특히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 참여를 선언한 팻 뷰캐넌씨, 앨 고어 부통령의 민주당내 경쟁자인 리처드 게파르트 하워의원 등이 보호무역 성향의 입장을 강력하게 고수하고 있다.
미국은 자유무역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양손에 쥐고, 통상압력을 가하는 게 관례다. 선거 전에는 표밭과 정치자금 후원자를 의식, 국내 시장의 문턱을 높이는 보호주의 경향으로 흐르고, 선거가 끝나면 자유무역주의를 외치며, 교역대상국의 문턱을 낮추라고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뉴욕=김인영 특파원 IN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