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사실을 확인하려면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아무리 심증이 가더라도 합리적인 증거가 제시되지 못할 경우에는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골프에서도 종종 확실한 증거가 제시돼야 하는 경우가 있다.
우측으로 휘어진 파4의 도그레그 홀. 그 휘어진 안쪽 부분에는 연못이 입을 벌리고 있다. 평소 드라이버 샷 거리에 자신이 있던 황사장이 연못을 넘길 요량으로 티샷을 했지만 볼은 연못 앞쪽에 있는 풀 더미 쪽으로 떨어지고 만다.
캐디와 골사장까지 모두 하나가 돼 볼을 찾아 보았지만 볼은 온데 간데 없다.
“연못에 빠진 것 같네. 워터해저드로 들어갔으니 여기서 드롭하고 치면 되겠지?” 황사장의 말이다.
하지만 골사장이 누군가. 골프 룰에 대해서는 형사 콜롬보보다 더 지독하다. “볼이 해저드로 들어간 것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증거가 필요한데……. 우리 모두 보지 못했고 다른 증인도 없네. 게다가 이곳의 지형도 굴러 들어갔다고 보기엔 무리이고. 그러니 분실구로 처리하는 게 맞지.”
결국 황사장은 1벌타를 먹고 다시 티박스로 돌아가 3타째를 쳐야만 했다. `실력이 없으면 시력이라도 좋았어야지`라고 투덜거리며.
볼이 워터해저드 방향으로 간 후에 분실된 때 그 해저드에서 분실되었는가 그 밖에서 분실되었는가의 여부는 사실에 관한 문제가 된다. 그 볼이 해저드 내에서 분실된 것이라고 처리하기 위해서는 볼이 해저드 안에 들어갔다는 합리적인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한 증거가 없을 경우에는 그 볼은 분실구로 처리해야 하며 분실구에 관한 규칙을 적용한다. (규칙 26조1항)
<박민영기자 mypar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