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이 거의 끝나 당장은 괜찮지만 내년 봄 꽃게철이 걱정이네요.”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서 20년 넘게 장사를 해온 김순이(57ㆍ여)씨. 굴을 까면서 내뱉는 한숨이 깊다. 스티로폼 박스에 써놓았던 서해안산이란 팻말은 서해안 원유유출 사고가 터지자마자 거둬버렸다.
재앙 수준이라는 서해안 원유유출 사고가 터진 지 일주일째인 14일 노량진수산시장의 분위기는 콘크리트 건물에 갇힌 조명만큼이나 어둡다. 패류 전문매장의 일부 좌판은 아예 비닐 덮개로 덮여 있다. “물건을 받아도 팔리지 않으니 장사를 해 뭐하느냐’고 시위하는 듯하다. 원유유출 사고는 서해안 주민들의 삶뿐 아니라 노량진수산시장에도 커다란 그늘을 드리우고 판매행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큰 변화는 남해안산ㆍ서해안산이라는 기존 원산지표기가 사라지고 구체적인 지역명이 표시되고 있는 것. 고흥 굴, 벌교 새꼬막, 여수 꼴뚜기 등의 식이다. 패류만 10년째 팔아왔다는 황남숙(53ㆍ여)씨는 “우리는 서해안산 굴을 아예 안 쓴다고 해도 믿지 않으니 굴 받는 곳을 일일이 다 표시해야 한다“며 “그래도 안 믿어 문제”라고 하소연했다.
이런 상황은 농협 하나로마트나 이마트 등 대형 마트들도 마찬가지다. 농협 하나로마트 수산물 코너는 지난 11일부터 서해안산ㆍ남해안산으로 분류하던 패류의 원산지를 고흥ㆍ통영 등 구체적으로 표시하고 있다.
하지만 궁여지책에도 끊긴 소비자들의 발길이 이어지지 않아 걱정만 커가고 있다. 일찌감치 좌판을 정리하는 김점순(62ㆍ여)씨는 도매상에서 물량을 조금 받아 장사하려다 손님이 없어 받은 가격보다 낮게 넘겨주고 들어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원유유출 사고가 터진 후 반짝 강세를 보였던 굴ㆍ바지락 값이 오히려 떨어진 게 이를 반증한다. 원유유출 사고로 서해안산 반입은 중단됐지만 남해안산 반입이 늘어나고 소비는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노량진수산시장의 깐 굴 반입량은 12일 1만8,158톤에서 14일에는 1만9,700톤으로 늘었고 시세(도매가)는 kg당 7,383원에서 7,148원으로 떨어졌다. 이는 원유유출 사고 전보다 더 낮은 가격이다. kg당 1,220원대였던 바지락 값 역시 11일 1,327원까지 올랐다가 14일에는 1,229원으로 하락했다.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의 더 큰 걱정은 내년. 봄 꽃게철을 맞아 꽃게 주력어장인 안면도 인근과 태안반도에서 올라오는 꽃게 물량이 줄어들고 올 겨울 굴로 담그는 젓갈류 공급에도 악영향을 미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조류의 영향으로 충남 안흥항 앞바다에 밀집하던 오징어잡이 배들이 기름띠에 밀려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오징어 공급 감소도 예상된다. 동해안이 주산지였던 오징어는 해수온도가 상승하며 7~9월에는 서해안으로 몰려 지난해 전체 오징어 생산량의 7% 정도가 서해 앞바다에서 잡혔고 노량진수산시장의 경우 전체 오징어 물량의 30% 이상이 서해안산으로 채워졌다.
김종태 농협하나로마트 수산팀장은 “겨울철이다 보니 원유유출 여파가 패류 쪽에 제한되고 있지만 내년 봄에는 꽃게는 물론 어류에도 영향을 미쳐 반입물량이 달릴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반입물량에 대한 우려보다는 수산물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수요가 끊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더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