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한국은행 내부 익명게시판인 '발전전략참여방'에 직원들이 올린 글이다. 본지는 이날 1ㆍ3면에 '위기의 한국은행'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김중수 총재 체제하의 통화정책과 소통에 대한 비판 시선을 객관적으로 전달한 기사다. 그런데 한은은 이 기사를 스크랩에서 제외하면서 직원들의 눈을 가린 것이다.
스크랩에서 기사를 뺀 주체가 공보실 차원인지, 김 총재가 직접 지시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가뜩이나 '절간'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한은이 내부 직원 사찰 논란을 거치면서 입을 막더니, 이번엔 귀까지 막아버렸다는 점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한은이 왜곡된 시스템을 비판하는 기사에 해명자료를 내는 해프닝을 벌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내놓은 변명이 "해명자료가 나간 기사는 스크랩에서 제외한다"는 것이었다. 궁색하다 못해 해괴하기까지 하다.
국내 대부분의 공보실은 그날그날 신문기사를 모은 스크랩을 기관장과 임직원들에게 배포한다. 그런데 윗분의 입맛에 맞는 기사만 스크랩에 포함하고 불리한 기사를 뺀다면 그 조직이 정상적으로 굴러가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여론 조작이다. 이런 한은을 국민이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한심한 태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김 총재에 대한 비판에 한은 집행부는 특정학교 출신 전ㆍ현직 임직원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은 특정학교 출신이 김 총재를 비난하고 기사를 제보한다는 것이다. 이 학교 출신의 한 직원은 "당분간 사적으로라도 통화하지 말자, 괜히 내가 의심받을 수 있다"며 한시적 절교를 선언했다.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다양한 연구보고서를 생산해야 하는 한은이 소통을 얼마나 등한시하는지, 직원들이 얼마나 자괴감에 빠졌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남을 따르는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설파했다. 이번주 말 김 총재가 아리스토텔레스를 공부하면서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