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집단소송제(Class Action) 도입이 가져올 파장은 메가톤급이다. 만약 이 제도가 전격 도입될 경우 선진국에 비해 보잘 것 없는 국내 소비자구제제도는 일대 혁신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그러나 기업들에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재무구조가 탄탄하게 갖추지 못했거나 상품경쟁력이 없는 기업들의 경우 단 한번의 소송만으로도 벼랑 끝에 몰릴 위험이 있다. 대기업들이 이 제도의 도입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다. 경우에 따라서는 출자총액제한이나 금융계열사 계열분리, 공정위의 사법경찰권 보유 여부 보다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클 것이란 분석도 여기서 비롯됐다.
◇왜 도입하나 = 차기 정부가 소비자 집단소송제를 공약으로까지 내세우며 단계적 도입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이유는 소비자주권을 크게 확대하기 위해서다. 현재 소비자들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는 제조물 책임법(PL), 리콜제도등 몇 가지가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산업과 사회가 빠른 속도로 변하면서 소비자들의 피해도 일상화될 뿐더러 개인 혼자만으로는 소송을 제기하기 힘든 소액피해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자혜 소비자시민의 모임 사무총장은 “집단 소송제 도입은 지난 90년대초부터 소비자를 생각하는 시민단체들이 꾸준히 외쳐온 숙원사업이다”며 “약자일 수 밖에 없는 소비자의 권익 향상을 위해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우코닝 사례가 촉매제로 작용 = 다국적 기업인 미국 다우코닝사가 제조한 실리콘팩을 사용해 유방확대수술을 받은 후 부작용으로 고생하던 여성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해 손해배상을 받아 낸 사례는 소비자 피해구제제도를 강화하려는 차기 정부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우코닝사는 유방확대수술후 피부가 썩는 등 피해를 본 여성들로부터 소송을 당해 결국 15년동안 32억달러(약 3조8,400억원)을 물어내야 할 처지에 몰려있다. 같은 수술을 받은 우리나라 여성 1,200명도 지난 94년부터 국제적으로 진행된 이 소송 덕택에 최고 1억2,000만원까지 총 300여억원을 보상받을 수 있게 됐다.
◇어떻게 도입하나 = 인수위와 공정위는 이 제도 도입에 따른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피해가 큰 업종을 시작으로 점차 범위를 시기별로 넓혀가겠다는 구상이다. 기업들에 주는 충격을 완충시키기 위해 유예기간을 주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공정위는 소비자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기에 앞서 소비자가 공정위의 심판을 거치지 않고 바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사소제도 도입도 신중 검토중이다.
권오승 서울대 법대 교수는 “장기적으로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면서도 “제도적 기반없이 집단소송제를 도입할 경우 초기 부작용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예상되는 걸림돌은 = 그동안 이 제도 도입을 적극 추진하던 소비자단체들은 환영일색이다. 그러나 갈수록 강화되는 소비자피해구제제도와 불투명한 경제전망으로 수세에 몰리고 있는 기업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 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가 지난 94년부터 10동안이나 있어왔지만 좀처럼 진전이 안된 것도 이 때문이다. 법적인 논란도 예상된다. 이 제도가 민사소송의 `당사자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당사자의 의중을 존중하는 민법의 내용과 정면 배치돼 입법 과정에서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다.
<박동석기자 everest@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