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가 난 지 약 4개월. 피해수습을 위해 줄곧 진도에서 머물던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26일 오후 안전점검차 제주도 외항 일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중·일 물류장관 회의 참석을 위해 세월호 피해가족들의 양해를 구하고 일본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고행의 약 130일간 덥수룩하게 자랐던 수염이 말끔히 면도된 자리에는 수척해진 낯빛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수염을 깎았어도 세월호 사고에 대한 책임감은 지우지 못했던 것일까. 고생한다며 위로하는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영접에 이 장관은 “고생은 무슨...지은 죄가 많다. 죄값이다”며 고개를 떨궜다. 사실 이번 일본 출장과 제주도 방문은 이 장관에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시신조차 찾지 못한 세월호 실종피해자가 아직도 10명이나 남은 데다가 사고 진상을 밝히기 위한 특별법은 기약 없이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세월호를 뒷전으로 미루고 다른 업무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여당 의원들이 그만 정상적인 업무로 돌아오라 요청하고 있지만 이 장관은 “아직도 해수부의 최대 현안은 세월호 문제”라며 완곡히 사양을 하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이 장관이 가시방석길 같은 대외업무에 나선 이유는 해양정책의 차질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커지는 탓이다. 그는 이날 제주지역 해양수산인들과 간담회를 가진 갖고 “(세월호 수습뿐 아니라) 해양수산을 비롯해 국민적인 일도 제대로 챙겨달라는 요청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더라”고 고민을 털어놨다. 해수부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해야 하고 할 일들이 많은데 장관이 진도에만 머물러 있어서 되겠느냐는 여론의 질책을 경청하겠다는 의미다. 그는 “앞으로는 이번과 같이 좀 더 현장에 직접 와서 여러 애로사항 직접 듣고 어떻게 정책변화 이끌어서 해양수산 부문 국가발전 이뤄갈 것인지 직접 챙겨가겠다”고 약속했다.
이 장관의 대외활동 재개를 장관직에서 물러나겠다던 거취방향의 변화로 해석해도 될 것인가. 당일 동행취재에 나선 서울경제신문의 이 같은 질문에 그는 “그것은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곧이어 “사고에 대한 합당한 책임을 지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며 “언제가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세월호 사고의 수습이 끝나면 책임에 합당한 처신을 하겠다”는 답변이 이어졌다. 그의 사의는 아직 유효했다.
다만 그는 “세월호 사고 수습과 병행해가면서 장관으로서 좀 더 챙겨야 할 해수부 업무를 잘 챙겨나가겠다”고 말했다. 거취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해수부 업무 정상화에 속도를 낼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 장관은 해양정책에 대한 책임감을 감안할 때 최소한 오는 정기국회와 내년도 예산안 처리 등이 걸린 연말까지는 집무수행을 계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그는 현지에서 해양수산인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연안여객에 대해선 안전혁신 대책을 지금 마련 중이다. 곧 정부 내 협의를 거쳐 발표할 계획”이라며 정상적인 업무수행의 의지를 다졌다. 아울러 “연안여객선 투입에 있어서는 좀 더 경쟁체제 도입해야 한다”며 보다 우수한 선사들이 연안여객 사업에 나설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해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