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우천으로 토막난 첫 지리산 종주

지리산 종주 (성삼재-대원사)가 (성삼재-세석 산장-거림매표소)로 1박 3일에서 무박 3일 (2003, 8/15-17, 금-일) 참가인원: 45명 서초구청 (금요일22:20) ?죽암 휴게소 (23:40-24:00) ? 함양휴게소 (01:14-45) ? 성삼재 (2:40-3:00) ? 노고단 고개(3:45) - 임걸령 (4:35)- 노루목 (5:05) ? 삼도봉 (5:30-50)_ 화개재 (6:10) ? 토끼봉 (7:00)- 비만남 (7:35)- 연하천 산장(8:40-10:00) ? 형제봉(11:05) ? 벽소령 휴게소 (12:00-10) ?칠선봉( 14:30) ?세석산장 (15:40-16:40) ? 산청 거림매표소 (19:40)- 집(일요일 8:30) 원래는 세석-천왕봉-중봉-대원사로 계획했었음 에필로그 처음 시도해 본 지리산 종주는 많은 회원의 숙박 예약이 안된데다 우천으로 비박도 불가능해서 도중하차했다. 미리 예견됐던 일이다. 우중에다 운무가 깔려 제대로 산 자체를 감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20여가지가 넘는 야생화를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다. 그리고 다음 지리산 종주 준비에 상당한 보탬이 됐다. 우천시의 문제점도 많이 알게 됐다. 연료 보충만 되면 해낼 수 있는 체력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부상자가 생기고 계획 변경후 산악회측의 매끄럽지 못한 마무리가 너무 맘에 걸린다. * * * * 황금의 징검다리 연휴 만든 광복절 오늘 (8월 15일)은 보수 진보가 각각 서울시청앞 광장과 종로 1가에서 상반되는 기념 시위를 벌이는 광복절이자 마지막 더위를 뜻하는 말복날. 이미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 짝을 못 찾은 숫매미의 구애(求愛)소리가 엷어지며 구슬퍼지고, 아침 저녁으로는 옷깃을 여미게 하는 날씨에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의 전형적인 가을 날. 징검다리 황금 연휴를 맞아 이미 목요일 저녁 가는 여름을 놓치고 싶지 않은 행락객들이 고속도로를 꽉 메웠다. 1박 3일의 지리산 종주를 위해 집을 나선 밤 9시 30분, 낮의 가을 하늘은 하얀 구름으로 살포시 그리고 푹신하게 덮여 있다. 일요일 온다는 비가 토요일에도 오겠다는 바꿔진 일기예보를 들은 터라 처음 해보는 지리산 종주가 순탄치 않으리라는 각오는 이미 했다. 서초구청 정문으로 나가니 논현동에서 왔다는 배낭에 등산 차림을 한 40대 아주머니가 벤치에 앉아 있는데 나와 같은 월산악회 지리산 종주란다. 예정시각 10분을 지난 10시 20분, 산악회버스가 우리 앞에 선다. 도중에 한번 더 일행을 픽업 45인승 차를 가득 메꾼다. 고속도로상의 차의 흐름에 큰 영향이 없는 걸 보니 전날에 이어 이미 행락객들은 대부분 빠져 나간 모양이다. 지리산 종주 등산객들로 산장에 대란 예상 대장님은 징검다리 황금 연휴라 금년 중 제일 많은 사람이 지리산 종주를 나서고 있어 산장마다 대란일 거란다. 밖에서 자야 할지 모른다는 오후 대장님의 전화에 나도 침낭을 준비했다. 배낭의 무게, 식량, 잠자리가 1박하는 데 따른 3가지 큰 현안인데 처음 해보는 1박 산행이라 걱정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비가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도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요소. 배낭무게는 10kg으로 하고 버너는 없어 일행한테 신세 진다는 생각으로 행동식에 중점을 두고 햇반 두개, 라면 하나를 챙겼다. 비박의 경우를 생각해 옷도 골고루 넣었다. 죽암 휴게소에서 잠깐 정차 (11:40:12:00) 하늘을 보니 달과 별이 하나도 안 보인다. 함양휴게소(01:15-45)에서 오뎅우동(3,500원)으로 일단 새벽 공복을 채웠다. 2:40 성삼재(1,100m; 천왕봉, 1,915m)에 도착, 하차하니 ``노고단 입구``라는 큰 간판이 산아래 남원 읍내의 조명발을 받으며 등지고 서 있다. 소슬바람이 세차게 불어 온다. 체감 온도는 영하로 떨어지는 것 같아 파카를 꺼내 입었다. 거추장스럽긴 해도 오르다 더워지면 벗는 게 나을 것 같다. 나 같이 생각하는 일행이 여럿이다. 화성이 달 옆에 또렷이 하늘에는 구름이 서쪽에서 몰려와 달을 가렸다 보여줬다 한다. 다른 별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달에서 남서쪽에 북극성보다 더 밝은 별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인간의 관심을 제일 많이 끌고 있는 화성이란다. 8월 27일 지구와 제일 가까워지는 날로 5500만킬로미터 거리. 제일 멀 때의 1/7이라니 정말 가깝다. 달의 배(지름 기준)의 크기인 화성이지만, 지구에서 달과의 거리가 34만 킬로미터 밖에 안되어 달이 그렇게 크다는 것은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화성이 이렇게 크게 보이는 것도 6만년만의 일이라니 천문학자나 아마추어에게는 더 없는 구경거리. 며칠 전, 달 바로 아래에 큰 빛이 보인다고 해서 UFO라며 아마추어들이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16명이나 되는 한 회사 직원 단체가 어둠속에서 디카 한 컷을 부탁해 찍어 주고 나니 벌써 대부분 일행이 돌이 깔린 넓다란 도로를 따라 가버렸다. (3:00) 달빛 기운이 있어 후래시는 꺼내지 않아도 되겠다. 경사가 급하지 않아 일단 처음 워밍업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도로를 버리고 숲속 돌길로 올라가니 노고단 산장이다.(1,370m) (3:35) 다른 일행들은 계속 도로를 따라 올라가는데 나는 홀로 후래시 불빛을 들고 직선 코스인 숲속 돌길로 10분 올라가니 노고단 입구 고개(3:45). 노고단(老姑檀) 정상(1,507m)은 보호구역으로 지정 출입 금지로 문이 굳게 닫혀 있다. 과거에 지리산 두 번 7-8년 전 지금처럼 평소 산행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백무동을 출발 천왕봉을 올라 칠선계곡을 내려오면서 혼이 난 기억이 있고 작년 가을 무박으로 성삼재에서 벽소령까지 가서 음정, 마천으로 내려 온 경험이 있다. 그래서 이 노고단 부터는 두번째인데 그 때는 후래시가 갑자기 말을 안들어 돌이 많은 길을 가느라 고생한 기억이 생생하다. 3:45 노고단 고개. 임걸령으로 가는 오솔길로 들어 섰다. 누군가 바람의 여신을 달랬는지 매섭게 불던 바람을 칭얼대는 어린애 잠재우듯 재웠다. 두어명의 일행이 나를 앞지른다. 돌들이 많아 후래쉬가 없으면 다리를 망가뜨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등산화도 목이 높고 튼튼해야 발을 보호할 수 있다. 원추리가 많아 원추리 뿌리를 캐 먹기 위해 멧돼지가 자주 나타나 이름 붙여진 돼지평전에 오니 산죽과 철쭉 등 키 작은 나무들이 눈아래로 깔리면서 오솔길을 거의 메우다 싶이 하고 있다. 아직도 어둠속이다. 앞 일행이 재빨리 달아나곤 해 뒤쳐져 가다보면 길을 잃을 지도 모른다. 4:35/임걸령. 우리 일행이 아닌 한 아저씨가 후래시가 작동이 안돼 같이 가게 됐다. 연휴라서 한번 와봤단다. 산을 두개 넘고 헬기장을 지나 임걸령에 도착해 후래시를 비추니 평편한 곳에 텐트가 보인다. 남쪽 피아골로 내려가는 분기점. 해방직후부터 자유와 공산의 두 이념으로 핏물이 들었다는 피아골은 이제 이 섬득한 과거는 멀리하고 지리산 제 2경인 단풍으로 많은 가을 등산객들을 유인하는 곳이 됐다. 아직 구경은 못했지만 그 유명한 직전(稷田)단풍을 즐길 날도 있겠지… 노루목에 와보니 선두그룹에 5:05 노루목. 앞 일행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번도 쉬지 않고 노루목에 도착하니 5명의 일행이 와 있다. 성삼재에서 여기까지 산악회에서 만들어 놓은 예상 소요시간 2시간 35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나를 포함 6명이 선두 그룹이란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갔으리라고 죽어라고 따라 붙었는데 미리 알았다면 쉬었다 천천히 왔을 텐데. 하기야 아무것도 안보이니 내달려 온 게 크게 잘못한 것은 아니다. 사실 따라오면서 역시 1박을 하면서 다닐 능력이 아직 안 되는구나 하면서 적지 아니 실망했었다. 북으로 반야봉 (1733m)가는 갈림길 이정표가 있다. 선두 가이드께서 가고싶은 사람은 1시간 밖에 안 걸리니 올라갔다 삼도봉으로 내려 오란다. 그런데 올라가야 구름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일 것 같다며 아무도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길만 따라가면 된다지만 초행길이고 밤이라 나도 혼자는 갈 마음이 없다.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삼도봉에서 불붙은 동쪽 하늘을 5:30-50 삼도봉. 다시 일어서 반야봉 허리를 돌다보니 후래시를 꺼도 걸을 만 하다. 무덤을 지나 20여분 정도 진행하니 바위로 된 삼도봉(1,490m). (5:30) 작년 가을에도 여기에 오니 쌀쌀했지만 훤해졌었다. 사방이 눈에 들어 온다. 전남북과 경남의 경계가 만난다 해서 삼도봉 (三道峰). 민주지산(1242m)에 있는 충북, 전북, 경북의 합일점이 진짜 삼도봉(1177m)이라고 일러준다. 그 삼도봉에는 정식으로 큰 탑까지 있단다. 일단 증명사진 한 컷. 삼각뿔 동판 둘레에는 ``三道를 낳은 봉우리, 전북, 경남, 전남 도민이 마주 보고 나서 天地人 하나됨을 기리다. 1998. 10月``이라고 양각돼 있다. 동쪽 산위로 구름이 깔려 있고 해가 올라 오느라 석양처럼 붉다. 선두 그룹이었던 한 아주머니가 하늘에 불 난 것 같단다. 불이 산이나 건물에만 나는 것이 아님을 말해 주었다. 디카에 한 컷. 반야봉에 오르면 더 좋을 것 같다고 가이드가 권하는데 배낭을 메고 다시 올라갔다 내려오고 싶은 생각들이 없어 보인다. 불경 중에서 262글자로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중요한 반야심경의 첫머리자의 이름을 갖고 있는 이 반야봉의 반야는 본 뜻인 ``지혜``와는 무관한 듯하다. 후에 연관성을 찾아보리라. 거의 피라밋형으로 흔히들 느끼기로 안정감있고 펑퍼짐한 게 부잣집 며느리의 엉덩이 닮았단다. 반야봉에서 저녁에 보는 낙조(落照)가 지리산의 제 3경이란다. 노고단이 있는 서쪽에는 산과 산 사이에 하얀 구름이 앉아 있다. 노고단 운해를 말해주기 위해 맛보기로 걸쳐 놓은 모양이다. 반야봉에 오르면 노고운해를 어느정도 실감할 수 있다고 선두가이드는 덧붙인다. 야생화가 내 눈에 붉은 수수이삭처럼 꽃을 떨구고 있는 장미과의 산오이풀이 보인다.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인상적이다. 하얀 꽃잎을 피우고 있는 청초한 구절초와 백색바탕에 연보라색 꽃의 벌개미취도 눈에 들어온다. 둘 다 국화과다. 꽃 모양으로는 쉽게 구별이 안된다. 눈여겨보면 잎으로도 확연히 구별된다. 지금처럼 간다면 1박을 할 세석 산장까지 12시면 도착하겠다며 (오후 4시 도착 예정) 이제부터는 날이 밝았으니 구경하면서 천천히 가잔다. 다시 일어섰다 (5:50). 만든지 몇 년 안된 목계단이 나온다. 겨울 아이젠에 계단이 망가질 까봐 고무판을 한쪽에 대 놓아 산행객에도 좋고 목계단도 좋다. 계단 양 옆 아래로 꽃들이 널려 있어 피곤하지가 않다. 동자꽃의 슬픈 전설 제일 눈에 많이 띄는게 동자꽃. 가는 길 옆으로 계속 군락으로 또는 홀로서 우아한 주황색의 꽃을 곤봉 모양의 꽃받침과 또 한번의 받침으로 튼튼히 자라고 있단다. 이 꽃에는 애달픈 동자승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어느 겨울, 설악산 골짜기의 조그만 암자의 스님이 어린 동자를 홀로 두고 시주를 하러 하산했다. 그러나 폭설로 돌아오지 못하고 눈 녹은 봄에 암자에 돌아 올 수 있었다. 가까이 오니 스님이 내려갔던 길목을 향해 동자승이 쪼그리고 앉아 얼어 죽은 것을 발견 하였다. 그래서 그 자리에 동자의 무덤을 만들었는데 여름에 이름모를 꽃이 무덤위에 피었다. 마치 동자가 웃는 것처럼… 이 꽃은 마을 쪽을 바라보고 있는 듯이 피어 있어 죽은 동자의 한이 꽃으로 피어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금도 모든 산아래쪽을 항하여 피는데 ``기다림``이라는 꽃말을 갖고 있다. 그 다음으로 많으면서 돋보이는 게 초롱꽃과의 모시대. 도라지꽃 모양의 보라색 꽃을 풀대를 따라 줄줄이 달고 서 계속 얼굴을 내민다. 흰 좁쌀 꽃으로 평평한 우산형을 하고 아름다움을 뽑내는 어수리도 많고 국화과의 흰 참취꽃도 즐비하다. 정말 야생화들의 천국이다. 서로 자기를 보아달라고 색으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람의 눈길을 잡느라 열심이다. (사실은 벌과 나비인데 사람측면으로 보면 그렇다.) 지그재그로 되어 있는 이 계단은 575계단이나 된다니 무릎이 약한 사람에게는 반갑지 않다. 사실 보통사람도 계단은 힘이 들게 마련이다. 그런데 여러 꽃을 눈여겨 보고 내려오니 언제 내려 왔는지 모르게 계단이 빨리 끝난다. 구름 때문에 조망은 되지 않는다. 화개재에는 텐트족들이 6:10/화개재. 계단을 내려오니 화개재(1,315m). 과거 능선 북쪽 남원 사람들이 완만한 뱀사골을 따라 농산물을 가지고 와 능선 남쪽 경남의 해산물 및 산나물과 물물교환이 이루어졌다는 지점이다. 그래서 공간이 꽤 넓직하다. 목계단의 네구석 사각형 넓은 목판에는 텐트들이 쳐져 있다. 아직 자고 있거나 일어나 식사준비를 하는 등산객들이 보인다. 뱀사골 산장에는 초만원인데다, 들랑거리는 사람들 소리 때문에 간밤 잠을 청하기가 어려웠다며 텐트 친 사람들이 부럽다고 한 아주머니는 말한다. 이제는 토끼봉(1,533m)을 향해서 오르막길을 가야한다. 삼도봉에서 내려온 것 보다 더 올라가야한다. 키큰 활엽수와 침엽수가 빼곡이 서 있다. 특히 구상나무는 지리산 교목의 대표선수. 한라산, 덕유산, 지리산의 1,000m 이상의 고지대에 자라는 우리 고유의 수종. 장사장님이라는 분하고 파트너가 됐다. 7:00/토끼봉. 친구인 김사장님이 같이 오자고 해 왔는데 지금은 물을 뜨러 뱀사골 산장에 내려가셨는데 등산을 잘 해 곧 쫓아 올 거란다. 쉬엄 쉬엄 주위의 꽃을 둘러 보면서 50여분을 오르니 토끼봉이란다. 신갈나무와 철쭉나무로 둘러져 있는 조그만 공터로 동쪽과 남쪽의 조망이 좀 된다. 토끼가 없다니까 사람이 오니까 금방 달아났다며 농담을 건넨다. 반야봉 정동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12간지의 자(子)와 오(午)를 남북 축으로 해 정서가 닭(유:酉)이라면 정동은 토끼(묘:卯)가 돼 이 이름을 갖게 됐단다. 동쪽운해를 배경으로 사진 한 컷 부탁하고 일어섰다. 친구라는 분이 합류했는데 초반 선두그룹을 형성했던 분이다. 쌀과 버너를 가져와 밥은 해먹을 계획이란다. 나는 버너도 없고 햇반에 라면을 가져와 버너있는 분의 도움이 필요한 터였다. 비내리기 시작 7:35. 여기서부터는 셋이서 말동무가 됐다. 계속 낮은 능선을 따라가다 비를 맞게 됐다. 한 방울씩 떨어지더니(7:35) 곧 굵어진다. 우리는 아예 비에 대비하기로 하고 배낭을 내려놓았다. 배낭싸게를 꺼내고 우의를 꺼냈다. 나는 우산을 쓸까하다가 비가 많이 오면 우의로 바꿔야하는 부담 때문에 처음부터 우의를 택했다. 아침 서초구청앞에서 만난 논현동댁도 오길레 꺼내 입도록 했다. 오르막길을 가다 보니 너무 더워 땀이 많이 난다. 빗발은 굵어진다. 아무래도 침낭 때문에 배낭이 완전이 덮이지 않아 우산도 펴 들었다. 시장끼도 든다. 비내리는 연하천 산장은 난민 수용소 방불 8:40-10:00 연하천 산장. 여지껏 지나온 봉우리 중 제일 높은 명선봉(1,586m)을 지나 목계단을 내려서니 곧 연하천 (烟霞泉) 산장 (1,440m). (8:40) 성삼재를 떠난 후 5시간만인 8시에 도착 아침식사를 하라고 했는데 40분 늦은 8:40분. 비가 오는 바람에 마지막 명선봉을 넘어 오면서 힘이 꽤 들었다. 연기가 뽀얗게 피어오르고 놀이 있듯[烟霞] 아름다운 곳의 샘물이라니 이전에도 사람이 집을 짓고 살았음직하다. 물이 있고, 북쪽은 산이 바람을 막아 주고 앞은 터져 있다. 개인 산장인 걸 보면 확실한 듯 싶다. 밤에 꽃이 반짝 반짝 빛난다 해서 붙여진 오래된 야광나무가 아래쪽 울타리가 있을법한 곳에 서 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있다. 비를 피해 주는 대피소는 이미 자리잡은 사람들이 맛있게 아침 식사중이고, 바쁜 사람은 노천에서 굵지는 않지만 비를 맞으며 버너를 키고있다. 비닐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바위에 걸쳐 그나마 낫다. 허기지면 죽는다는 구호라도 외웠는지 먹어야 한다는 게 지상명령인 듯 싶다. 난민 수용소 같다. 얼마나 많이 등산객이 연휴를 맞아 지리산에 왔는지 짐작이 간다. 서 너평 남짓 한 대피소 안에 비집고 들어가 장사장님이 쌀을 씻고 버너를 킨다. 나는 밥이 되고 난후 물을 끓여 햇반을 익혀 먹기로 했다. 김사장님은 소주팩을 따더니 한잔 권한다. 기분이 좋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않았던가. 배를 채우니 기운도 솟는다. 논현댁이 뒤늦게 오길레 우리 곁으로 인도하니 도시락을 먹고 재빨리 먼저 달아난다. 1시간 20분을 머물었다. 11:05/형제봉. 배를 채웠으니 이제는 정신없이 세석산장으로 가야한다. 주목군락을 보호 한다고 철망을 쳐 놓은 울타리를 따라 걸음을 재촉했다. 길은 매우 질척거리고 물이 괴어있는 곳이 많다. 남서쪽이 터진 삼각점(1,462m)의 바위에 와봐도 조망은 전혀 않돼 그냥 지나쳤다. 형제봉에서는 (11:05)사람들이 많이 쉬고 있다. 높은 바위 둘이 등을 맞대고 있는데 이유없는 이름이 있겠나. 이 산에서 도를 닦고 있던 두 형제가 이 산의 요정의 유혹에 빠질까봐 서로를 지켜주다 굳어버렸다는 바위라고 그럴 듯 하게 이름을 지어 놓았다. 벽소령휴게소도 비슷 12:00/벽소령 휴게소. 비는 계속 내리고 조망이 전혀 안돼 가는 길옆만 보고 정신없이 50여분을 가니 벽소령 휴게소 (1,392m). 지리산의 제 5경인 밤 하늘[碧宵]에서 볼 수 있는 보름달의 벽소명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달의 비경이라고 한다. 지금은 밤도 아니고 비가 내려 그런 것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훗날에나 기약해 볼 일이다. 여기도 연하천과 마찬가지로 비가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대피소 안팎에는 등산객들이 점심을 준비하고 먹느라고 비집을 틈이 없다. 우리는 점심은 생략하기로 했다. 비가 계속 오니 아무래도 세석에 가봐야 비박도 힘들어 여기서 하산하자는 제의도 해 봤지만 장, 김 두 사장님은 그냥 가 보자고 한다. 작년 가을 이곳에서 임도를 따라 음정, 마천으로 내려 갔던 곳. 이 임도는 화개와 연결되는 길로, 만나는 지점은 구벽소령으로 현 지점에서 동쪽으로 조금 더 가면 있다. 여기서 (12:10) 세석산장까지 6.2km 4시간 거리로 돼 있어 정상적으로만 가면 산악회측의 계획과 딱 맞는다. 이 구간은 나의 첫 산행 능선이다. 김사장이 50m 아래 샘에서 물병에 물을 채워 가지고 오자 우리는 길을 나섰다. 지나는 사람이 별로 없다. 비가 오다 그쳤다를 계속한다. 바위가 금방 머리위로 떨어져 내릴 것 같은 곳도 있고 구름이 없으면 남쪽으로 계곡과 능선이 그림 같이 보일 것 같은 곳이다. 힘들면 앉아서 쉬기도 하면서 간다. 돌이 많은 길이다. 야생화를 보는 재미로 갈 수 밖에 없다. 물봉선도 제 철인 모양이다 분홍의 꽃을 아래로 달고 서 있는 게 많다. 산형의 흰 미나리냉이, 노란 짚신 나물, 꽃을 씨로 변화시킨 산 비비추, 다섯장의 분홍 꽃잎을 한 이질풀, 빨간 송이풀. 지리의 제4경인 철쭉꽃은 철이 지나 볼 수 없다. 14:30 칠선봉. 덕평봉 (1,521m)을 지나 바위가 우뚝 선 칠선봉(1,576m)에 오니 (14:30) 주위가 조금 보인다. 연료부족으로 기운이 없다. 배낭에서 소시지 세개를 꺼내 하나씩, 고소미 한봉씩 먹고 물을 마시니 기운이 난다. 지나는 사람들도 하나 둘 앉아 쉰다. 아들을 데리고 온 한 아버지가 시야에 들어 오는 붉은 솔방울을 보고 신기해 한다. 솔방울이 붉다 해서 붉은 구상나무 암컷. 암수 딴 그루다. 참취꽃을 ``먹취``라며 일러준다. 오는 중에 곰취를 본적이 있느냐고 묻길래 숲속에서 만나 한 컷 찍었고 형제바위 뒤를 지나면서 북쪽 바위위에 샛노란 타래형 꽃을 달고 있는 것을 봤다니까 대원사 근처에 많다고 알려 준다. 곰발바닥처럼 둥글고 잎에 톱니가 있는 흔치않은 국화과 산나물로 다른 취는 흰꽃인데 노랗고 꽃 모양도 전혀 다르다. 숙박 예약 안된 사람은 하산하라는 세석측의 멘트 15:40/세석 산장. 연료 공급이 끝난 후 다시 행군했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더 험하다. 막바지다. 모여 있던 사람들하고 같이 갔다. 발에 힘이 생겼는지 목계단을 두 번, 철사다리를 한번 쉽게 올라 서니 바위아래와 근처에 조망이 조금 된다. 구상나무 군락지인지도 모른다. 고사목도 있다. 나무 가지의 층을 보고 나이를 센다는 소나무과의 침엽수. 세 개씩 뻗어난 가지에 붙어있는 짜리뭉특한 바늘잎이 마치 현미경으로 본 눈[雪] 결정체의 일부를 연상시킨다. 철쭉은 자외선을 너무 많이 쏘였는지 잎이 붉게 그슬렸다. 산오이풀과 산비비추가 군락을 이루며 많아지고, 줄기까지 노란 마타리의 샛노란 꽃이 가끔 눈에 들어 온다. 칠선봉 지나서는 산수국도 많이 보인다. 노란 바위 채송화, 역시 노란 원추리, 하늘 말나리도 눈에 띄었다. 영신봉(1,651m)을 지나니 길이 넓어지고 야생식물보호구역이 지정돼 있고 바로 세석 산장이다. (15:40) 여기도 등산객으로 엄청 분빈다. 산장 예약이 안된 사람들은 빨리 하산하라는 멘트가 나온다. 대장님은 비 때문에 비박도 불가능하고 다음날도 비가 계속 온다며 하산하기로 결정 식당에서 밥을 해 먹고 산청 거림 매표소쪽으로 내려 가란다. 올라오는데 3시간 걸렸다며 2시간 반이면 가능하단다. 우리는 라면을 두개 끓여 남은 밥으로 소주 한잔 하며 식사를 마쳤다. 배낭속의 옷가지 등이 많이 젖은 상태다. 16:40 하산시작. 해 떨어지기 전에 도착 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다섯이 한 조가 되어 내려가는데 장사장님이 걷기가 힘드시단다. 둘로 디디며 내려가라고 내 스틱을 주었다. 논현댁도 힘들어 하고 또 한 아가씨도 무거운 배낭으로 힘들어 한다. 그런데 계속 너덜길에 그많던 야생화는 하나도 안보인다. 어머니 같다는 지리산이 겉보기에는 민두름해 포근해 보이는데 실제 산길을 걸어보니 친어머니가 아니라 계모인 모양이다. 정말 사람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려는 속셈같다. 계곡의 웅장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 계곡의 물내림이 어떤 산도 그 웅장함을 따를 수 없어 보인다. 산이 높으니 비교를 불허한다. 한라장사나 금강장사가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거구의 백두장사를 당해낼 수 없는 것처럼. 셋을 남겨 놓고 둘이 줄곧 너덜길을 따라 주차장에 내려 오니 3시간 걸린 19시 40분. 장장 15시간 40분의 구보였다. 그것도 10시간 이상을 우중에서. 인내력과 지구력 테스트용인 지리산 종주는 산을 넘기 전에 자신을 넘어야한다는 극기정신과의 싸움이라는 데 하루만에 도중하차 해야했다. 야생화를 보며 하는 지리산종주도 극기 훈련이 아닌 즐거움을 만끽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20여가지 이상의 야생화를 확인 할 수 있어 어느 산에서도 이렇게 많은 야생화를 보지 못했던 터라 도중 하차한 첫 지리산 종주는 상당히 재미있었다고 생각된다. 언제 다시 도전하게 될 지는 미지수 이지만 오는 가을에 다시 시도해 가을의 지리에 흠뻑 취해 보리라. 15시간 40분 장정을 막걸리로 마무리 아직도 내려 올 사람이 많고 9명은 내일 아침에 내려오니 기다려 같이 서울에 가자는 대장님 얘기란다. 뭔가 논리가 맞지 않는 얘기라며 부부가 같이 온 조선생님이 크게 반발한다. 내가 듣기에도 좀 이상하다. 우리는 6명이 일단 옆 식당에 들어가 도토리묵 무침에 막걸리 두 독을 비웠다. 이, 장 사장님, 논현댁, 조선생님 부부와 나. 부인이 조선생보다 산행경력이 더 많다고… 아니라 다를까 새벽 선두그룹에 낀 유일한 여성분이 바로 조씨 어부인이었음을 알게 됐다. 부상자를 포함 내려와야 할 일행들이 더 있어 기다리다 차안에서 잠이 들었다. 일어나보니 훤한 아침이 됐고 우리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집에 들어서니 일요일 아침 8시30분. 1박 3일 일정이 무박 3일이 돼 버렸다. 끝 <채희묵 chaehmo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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