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책과 세상] "읽기의 차이는 곧 국력의 차이"

■읽기의 역사(스티븐 로저 피셔 지음, 지영사 펴냄)


韓·中 인쇄술 발명 빨랐지만
지배층 독점으로 서양에 뒤처져 메시지·메신저등 도구 다양화
읽기 영역 점점 더 늘어날 것
우리는 흰 종이에 쓰인 검은 흔적을 보며 울고 웃는다. 반복되고 단조로운 글씨들을 보며 정보를 얻고 감정이 움직이는 이유는 우리가 '읽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의 폴리네시아 언어 및 문학연구소 소장인 스티븐 로저 피셔가 쓴'읽기의 역사'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시절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읽기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읽기가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앞으로 읽기의 방향에 대해 모색한 책이다. 처음의 읽기는 모든 부호화된 체계를 보고 의미를 이해하는 단순한 기능이었다. 그러던 것이 면 위에 적힌 연속적인 기호를 이해하는 것으로 발전했고 최근에는 연속적인 기호뿐 아니라 그 속에 내제된 정보를 이해하는 것까지 포함하게 됐다 책은 우선'읽기'가 발달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인 인쇄술에 대해 설명한다. 지난 500년의 역사에서 인쇄술만큼 사회에 크게 공헌한 발명은 없으며 인쇄술은 불을 발견하고 바퀴를 사용하는 능력과 함께 인류에게 중요한 발명이라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한국과 중국이 일찍이 인쇄술을 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쇄 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한다. 한국과 중국의 인쇄술 혜택은 지배층에 국한되고 대량 보급되지 못했기 때문에 '읽기 혁명'이 일어난 서양에 비해 문화적으로 뒤처지게 됐다는 것이다. "중세 말의 유럽과는 달리 중국과 한국 두 나라에서는 정부기관들이나 부자 후원자들에 의해 대량 인쇄가 이뤄졌다. 15세기 한국의 세종대왕은 궁정에서 한글로 발간된 책자의 판매를 금지했으며 그러한 정보가 필요한 고위층과 학자들에게만 수백 부 배포됐다. 조립식 금속활자에 의한 인쇄술의 대단한 잠재력을 한국과 중국 두 나라 모두 깨닫지 못했다." 반면 서양은 인쇄술이 한국과 중국에 비해 늦게 발명됐지만 자본주의 기반이 서로 상생했기 문에 '읽기 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읽기'의 차이는 곧 국력의 차이로까지 이어지게 됐다고 주장한다. 시장 경제의 발달은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에게 유리하며 지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땅들을 읽을 줄 아는 자들이 점령하게 된 것은 결코 역사적 우연이 아니라고 저자는 덧붙인다. 저자는 읽기가 '제 6감'이라고도 주장한다. 말하기와 달리 읽기는 인간이 가장 최근에 습득한 것으로 읽기를 관장하는 뇌의 부분이 어디인지 특정한 지점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읽을 때는 뇌의 여러 부분이 활동하지만 다른 것을 제쳐놓고 독자적으로 개입하는 부분이 없이 복합적으로 기능한다고 말한다. 또 읽기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며 기록된 것을 받아들이는 내재적 감수성까지 포함돼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새로운 기구가 미래의 읽기를 좌우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출판이 더 이상 인쇄만을 의미하지 않는 시점에 새 기술은 읽기 도구를 다양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읽기'의 영역은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저자는 가장 큰 근거로 온라인 언어가 구어를 대체하고 있는 예를 든다. 이미 많은 이들이 구어를 '듣는' 것보다 '읽는' 경우가 더 많아지고 있다. 사람들은 전화로 '통화'하기보다 메시지를 보내고 읽는 것을 선호한다. 직장에서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도 '메신저'를 이용해 읽고 쓰면서 읽기가 '대화'를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읽기의 정의는 앞으로 더 확장될 것이며 이는 인류의 발전을 나타내는 척도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1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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