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96년 12월 소주 도매업자의 `자도(自道) 소주 의무 구입'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지만 여전히 소주 선택에는 지역색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고법 특별6부(이동흡 부장판사)는 27일 경남의 대표적 소주업체인 무학이부산 지역 소주업체 대선주조를 인수하려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지당하자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29일 밝혔다.
대선주조는 선고 전 이미 롯데그룹 계열사 임원을 대주주로 영입, 무학의 적대적 M&A 시도와 경영권 분쟁을 해결지어 소송 결과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던 상태.
그러나 소주업체끼리 얽힌 이 소송에서 법원 명령에 따라 제출된 비공개 문서에는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가 포함됐다.
원고가 지난해부터 올해초까지 부산, 경남의 만 19세 이상 음주경험자 400명을대상으로 작성한 소주음용형태 보고서에 따르면 73.78%는 `주변 사람들이 많이 마시는 친숙한 소주', `내 고장을 대표하는 소주' 등 지역 대표성, 지역 정서 등을 소주선택 기준으로 삼았다.
반면 `순한 맛', `음주 뒤 냄새가 없다' 등 맛을 기준으로 선택한 소비자는 26.22%에 그쳤다.
보조참가인으로 소송에 참가한 대선주조가 부산,경남 소비자 1천여명과 영업점100곳을 대상으로 작성한 내부 보고서에도 69.9%가 `늘 마시는 소주라', 23.3%가 `내고장 소주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두 업체가 합병해 소주 가격을 30% 올려도 매출이 48.5% 이상 줄지 않는 한 이윤이 날 수 있다는 보고서 결과도 나왔다.
무학은 소주 시장이 전국화됐다며 인수, 합병에 따른 시장 지배의 범위를 전국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보고서 등을 근거로 소주 시장이 여전히 지역 시장이라며 청구를 기각한 것.
재판부는 "위헌 결정 이후 대선, 무학 점유율이 증가한 것은 저가 정책에도 영향을 받았지만 정권교체라는 정치적 환경 변화에 따른 지역 정서가 결집된 것으로보인다"며 "법적 진입 장벽은 없어졌으나 지역업체들의 노력과 지역 주민들의 강력한 선호도 때문에 사실상 진입 장벽이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70년대 초 400여개의 소주회사가 난립하자 81년 1도, 1개의 소주업체만남겨두고 소주도매업체들에게 50%는 자도 소주를 구입하도록 했지만 헌재는 이 법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