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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내 정보기술(IT) 대기업들은 부쩍 상생과 동반성장을 외쳤다. 기자의 e메일함에는 이들 기업의 상생 방안과 실천내용을 담은 보도자료 e메일이 아직도 100통 이상 쌓여 있다. 어떤 기업은 최저가 입찰을 없애 중소 협력사들이 가격 경쟁보다 기술 경쟁에 집중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고 또 다른 기업은 '핵심 기술'을 공개해 동반성장을 이끌어 내겠다고 다짐했다.
협력사들과 한 자리에 모이는 세미나나 포럼도 참 많이 열었다. 우수한 파트너들에게는 상도 줬다. 그리고 이들 기업의 임원들은 불우이웃들을 위한 김장이나 연탄배달 등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해 사진을 찍었다. 내부 문화가 변하고 있다는 조짐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일부 IT대기업 관계자들은 개발자들이 주최하는 모임에 쫓아다니며 그들과 소통하는 법을 익혔다. 아직 변변한 성과를 내지 못한 개발자들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실제로 잘못된 부분을 시정한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실망스러운 이야기도 들려온다. 한 중소 IT기업 관계자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전히 최저가 입찰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애초부터 별 기대도 없었다는 말투였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썼구나'싶은 생각에 관련 기사를 쓴 기자로서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또 어느 개발사 대표는 "IT 대기업에 제출한 중소 개발사들의 아이디어가 개발자도 모르는 새 도용되는 경우도 여전하다"고 전했다. 개발자들을 '프로그램 짜는 기계'로 전락시키는 갑을병정식의 하청 구조도 아직 굳건하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르라는 법은 없다. 누군가는 정말 공생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정책을 마련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시행착오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섣부른 포장과 뒷일은 책임 안지는 것에 불과하다는 빈축만 살 뿐이다. 다양한 정보와 경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똑똑해진 소비자들도 과대포장을 귀신같이 알아챈다. 최고경영자(CEO)가 곤란한 상황이라거나 정치권 진출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가 나돌 때는 더욱 그렇다. 묵묵히 제갈 길을 가면서 실제 행동과 결과물로 보여주는 '쿨 한'기업들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