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의 동남아 3개국 순방이 끝났다. 대통령이 기업인들과 함께 3개국을 방문하여 경제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은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동남아 거점 국가들에 대한 적극적인 경제 외교라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동남아는 우리의 중요한 수출 시장이자 자원의 공급처이며 또한 상호 보완적인 경제 구조를 활용하여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에 매우 적합한 경제 협력의 무대다. 「도이모이」 정책을 통해 경제개발의 첫 걸음을 내디딘 베트남, 2000년까지 동남아의 신흥공업국으로 발돋움하려는 필리핀, 그리고 2020년의 선진국을 꿈꾸고 있는 말레이시아, 이들의 현재 경제수준은 우리보다 못하지만 경제 성장에 대한 의욕과 열기는 다른 나라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세계최고 성장지대
지금 하노이시는 선진 기업의 간판에 뒤덮여 있고 필리핀의 수비크만은 동남아 최대의 물류기지로 탈바꿈하기 위해 부산하다. 마닐라와 콸라룸푸르에 건설중인 30∼40층짜리 빌딩숲 사이로는 유창한 영어로 무장한 젊은 비즈니스맨들이 뛰고 있다. 미래지향적인 목표 설정, 정부의 적극적인 주도, 그리고 주민의 자신감이 어우러져 경제 전체가 활기에 넘치고 있다. 명실상부하게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동남아 지역의 현주소다.
그러면 우리는 동남아 국가들과 무슨 분야에서 어떤 방법으로 경제 협력을 전개할 수 있을까. 우선 서로 다른 경제 발전 단계, 경제 구조와의 보완성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경제협력을 추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동남아 지역의 전력, 도로, 항만, 기본 산업시설 등 엄청난 사회간접자본 건설 수요는 국가 차원에서의 경제협력기회뿐 아니라 풍부한 경험을 보유한 국내 건설 및 플랜트 산업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단순 조립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첨단화, 고부가가치화하려는 말레이시아는 국내 전자, 자동차 산업의 입장에서 글로벌 소싱과 네트워킹 전략을 실현할 적절한 대상지역인 셈이다.
○차별화전략 시급
산업간 보완적 구조를 살리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선진국과는 차별화된 경제 협력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된다는 점이다. 아시아에서 일본을 제외하고는 유일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우리는 동남아 국가들과 동질감을 유지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과 차별되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중 하나는 우리의 경제 개발 경험이다.
사실 동남아 지역의 개도국에서는 한국의 경제 개발 과정을 연구하여 자신들의 성장전략의 모델로 삼으려는 노력을 많이 기울이고 있다. 더구나 베트남과 같이 사회주의 체제에서 전환하여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고 있는 경우 경제개발의 경험 외에도 시장경제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각종 제도의 도입과 운영에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번 순방기간 중 합의된 베트남의 증권거래소 설립 지원 약속이 좋은 예다. 앞으로는 경제개발 경험과 함께 생산기술 개발, 조직 운영 등 우리가 체득한 경영 노하우를 이전하고 전파하는 채널을 마련하여 경제 협력에 상호 신뢰감과 지속성을 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경쟁력이 성패좌우
그렇다면 이 지역 국가들이 신흥공업국 또는 선진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종국에는 우리의 경쟁상대가 되고 상호 이익보다는 제로섬 게임적인 경쟁을 치르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사실 그동안 우리 경제는 동남아 개도국에 선망의 대상이자 한편으로는 따라잡으려는 경쟁상대였다. 이번 순방을 계기로 일부 국가에서 그동안 한국 기업에 대해 지니고 있던 다분히 부정적인 시각이 많이 교정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커다란 시사점을 준다. 한국 기업과 경쟁하면서도 동시에 협력함으로써 자신들의 경제 발전에 더욱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심어지자 비로소 그들의 시각이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쟁과 협력이 가능하려면 우리 자신의 경쟁력이 한층 제고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따라서 우선 경쟁력의 근본인 인적 자원의 양성에서 동남아 국가들에 뒤질 수는 없다. 동남아와의 경제 협력은 물론 기업 경영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단단한 외국어 실력과 함께 각 분야의 전문 지식과 경험을 갖춘 전문가의 양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아울러 전세계적인 경영 네트워크 및 정보망을 구축하여 동남아를 그 주요거점으로 삼아야 한다. 이를 통해 경제 협력 기회가 확대됨은 물론 한국 기업의 세계화 추진도 더욱 심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중요한 것은 동남아 국가에 비해 경쟁력을 가장 확고히 할 수 있는 부문은 다름 아니라 시장경제체제의 완전한 정착을 통한 우리 경제의 실제적인 자유화와 개방화의 달성이라는 점이다. 생산 비용과 생산 기술의 우위는 오래 지속될 수 없으나 자유화와 개방화를 통해 다져진 경제체질의 선진화는 경쟁력의 궁극적인 원천이 된다. 자유화와 개방화를 위한 정부의 과감한 행정 개혁이 뒤따라야만 우리 경제의 차별화된 경쟁력이 확보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