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둘러싼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금리가 낮은 유로화를 빌려 글로벌 자산에 투자하는 '유로 캐리 트레이드'가 부활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 미국의 경제상황이 최근 호전되면서 3차 양적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진 반면 유럽은 경기침체를 이유로 유럽중앙은행(ECB)의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유로 캐리 트레이드가 활발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ECB는 지난해 11월과 12월 두 차례 기준금리를 내린 후 1%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저금리로 유로화를 빌려 멕시코ㆍ호주 등 4%대의 기준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에 투자하는 유로 캐리 트레이드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당분간 유로화 약세가 전망되는 점도 유로 캐리 트레이드를 더욱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유로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면 유로화를 빌렸다가 되갚을 때 환차익까지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ECB는 유럽판 양적완화로 불리는 3년물 장기대출 프로그램(LTRO)을 도입해 시중에 유동성 공급을 늘리며 유로 약세를 유인하고 있다.
반면 미국 고용시장 개선을 나타내는 경제지표들이 잇따라 나오면서 달러화는 상대적으로 강세를 나타내고 있으며 3차 양적완화 가능성도 희박해지면서 미국으로 투자자금이 몰리고 있다.
이 같은 유로화 약세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경제에 당장은 긍정적인 측면이 더 크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FT는 유로화 평가절하가 수출과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등 유로존에 혜택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UBS의 샤합 잘리누스는 "시장에서는 유로화 약세를 정책실패로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달러화 표시 부채를 많이 보유한 유럽의 일부 은행들과 기업들이다. 유로화 약세로 채무부담이 더욱 커지면서 가뜩이나 취약한 재무안정성이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들 가운데 일부가 유동성 위기에 빠질 경우 유럽 금융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
더구나 유로 캐리 트레이드가 활성화되면서 유로화 가치는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고 있다. 9일 1유로당 1.27달러선까지 붕괴되며 유로화가 16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올 들어 주요국 통화 가운데 최악의 성적을 보인 것도 유로 캐리 트레이드 때문이라고 FT는 지적했다. 반면 캐리 트레이드 대상인 호주달러와 멕시코 페소화는 가장 많이 상승했다.
이미 헤지펀드들은 유로화 매도 포지션을 사상최대 규모로 쌓아놓았으며 장기 투자자들도 유럽 금리가 더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캐리 트레이드를 위해 유로화 조달에 나섰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지난주 유로 매도 포지션은 13만9,000계약에 달했다.
일부에서는 유로 캐리 트레이드가 2008년 전까지 붐을 일으켰던 엔 캐리 트레이드만큼 인기를 누리지는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은행의 대출여력이 낮아졌고 시장의 변동성은 커져 투자자의 자금조달 능력이 이전보다 떨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