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보험산업을 둘러싼 환경은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다.
보험사는 기본적으로 두 개의 날개로 지탱된다. 하나는 보험 계약을 통한 자금유입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금운용수익을 통한 수익창출이다. 그런데 경기침체 장기화로 보험가입을 통한 수입보험료가 줄고 있는 차에 부쩍 강화된 금융소비자 보호 움직임이 수수료 인하 등 사업비 개편으로 연결되면서 보험 영업을 통한 마진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과거와 같은 고성장기였다면 자산운용수익으로 이를 메울 수 있지만 현실은 저금리 때문에 완충역할을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굳이 표현하면 두 날개 모두 꺾인 상황이지만 금융당국마저도 정책 초점을 재무건전성에 맞추면서 해법 모색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고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상품 포트폴리오에 변화를 주고 고비용 조직에 메스를 대는 식으로 보험사가 자구적인 노력을 펴고 금융당국도 보수적 감독 관행에서 벗어나 보다 유연한 정책으로 화답한다면 오히려 위기는 도약을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강호 보험개발원 부원장은 "최근 보험사들이 직면한 저금리, 고령화, 세제혜택 축소 등의 시장 환경은 녹록지 않지만 한편으로 이는 양날의 칼과 같다"며 "이전과는 다른 관점으으로 대안을 모색하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부작용에 슬기롭게 대처하면 보험산업의 체질이 더 건강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상품ㆍ조직 등 전 분야에 혁신 필요=상품 차원에서는 일단 금리 리스크를 줄이는 게 시급하다. 저금리로 자산운용수익률이 4~5%대까지 내려간 마당에 4% 중반 수준의 공시이율을 내건 저축성 보험 위주의 상품으로는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형사의 경우 과거 외형확장기에 팔았던 6%대 이상의 금리확정 상품이 보험료 적립금의 35%에 달한다. 판매비중이 30%대로 떨어진 순수보장성 보험을 크게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조재린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최저보증이율을 낮추는 등 상품설계 단계에서부터 리스크 요인을 걷어내고 더 크게는 상품 포트폴리오도 새롭게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성장ㆍ고령화 등 시장 환경 변화를 반영한 신상품으로 돌파구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시장에서 각광 받는 질병보험ㆍ간병보험 등을 비롯해 손해보험사들이 준비하고 있는 노후의료비보장보험 등이 실례가 될 수 있다. 연금상품도 보험료 지급 방식을 달리하는 차별화된 상품을 생각해볼 수 있다. 강 부원장은 "고령화와 관련한 신상품을 만들고 저금리로 수익에 목말라 하는 고객들은 변액보험으로 유인하는 등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발상의 전환을 주문했다. 조 연구위원은 "금융소득종합과세의 기준이 2,000만원으로 낮아진 것도 고액 자산가들에게 보험 상품의 중요성을 일깨운 계기로 만들 수 있다"며 "이런 기회를 적극 살려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비용 채널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보험사의 판매 채널이 설계사가 주류다 보니 납입보험료 가운데 사업비로 빠져나가는 돈이 많고 자산운용능력도 은행ㆍ증권에 비해 경쟁력이 낫다고 말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 때문에 보험사가 기존의 판매 채널을 고수할 경우 연금 등의 시장이 확대돼도 소비자의 외면을 피하기가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온라인 전용 상품을 선보이거나 대안 채널 등을 발굴하는 보험사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진익 보험연구원 경영전략실장은 "현재 설계사는 판매수수료만 받을 수 있는데 보험계약 체결ㆍ관리와 관련한 자문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되면 설계사를 전문인력으로 육성할 수 있어 판매 채널 구조조정을 단행하기 위한 환경조성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대안투자ㆍ해외투자도 적극 나서야=저금리로 보험사들의 자산운용수익률은 하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생보사의 지난해 9월 자산운용수익률은 5.05%, 손보사는 4.51%까지 떨어졌다. 같은 시기 국내 보험사의 영업이익률이 3% 초중반까지 하락한 데는 운용자산수익 하락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국공채 위주의 투자로는 고객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고사하고 역마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도 이런 위기감 속에 인프라 투자를 비롯해 해외에서 발행한 국내 기업 채권인 KP, 안정적인 임대수입이 가능한 해외부동산, 신재생에너지, 선박담보대출 등을 두루 살펴보고 있다. 한 대형 손보사 자산운용담당 이사는 "정보나 투자 노하우가 부족하기 때문에 딜 소싱에 경험이 많은 외국계 파트너와 손을 잡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진 경영전략실장은 "보험사 자산운용의 특징상 장기채권의 매칭이 필요하지만 여기에 너무 집착하면 수익을 놓칠 수 있다"며 "원자재ㆍ곡물 등의 상품시장도 장기로 투자하면 단기 변동성을 감내할 수 있는 만큼 전향적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본확충을 뼈대로 한 위험기준자기자본(RBC) 규제가 강화된 점은 부담이다.
이석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RBC 규제의 턱을 너무 급격하게 높이면 투자에 따른 리스크를 부담하기가 어려워진다"며 "방향은 맞지만 속도를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해외진출에도 보다 적극적인 자세 전환이 절실하다. 지난 2011년 기준 생명보험 가입률은 87.3%, 가구당 가입건수는 3.8건, 손해보험 가입률은 91.4%, 가구당 가입건수는 3.0건으로 국내는 이미 성숙시장에 가깝다. 그러나 아직도 국내 보험사의 해외영업 비중은 0.2% 수준에 불과하다. 대형 생보사 임원은 "해외진출이나 대안투자의 경우 금융당국의 감독 방식에도 문제가 많다"며 "지나치게 경직되고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하다 보니 규정상 가능함에도 뒷다리 잡는 식으로 정당한 시도를 좌절시키기도 한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