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1월 28일] 총장과 총리, 총대

정운찬 국무총리가 또 구설수에 올랐다. 세종시와 관련된 TV토론회 녹화를 마치고 난 뒤 재녹화를 요구한 것이다. 방송을 다시 찍자는 데 토론자들은 반발했지만 결국은 재녹화분이 방송에 나갔다. 정 총리의 실언 또는 실수는 한두 번이 아니다. 국회에서 세균전으로 유명한 일본군 731부대를 '항일독립군'이라고 답변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세종시에) 행정부처가 오면 나라가 거덜날지도 모른다'는 발언으로 야당은 물론 여당의 질책을 받은 적도 있다. 야당의원의 빈소에서도 고인에 대한 무지로 빈축을 샀다. 총리의 3無와 3總 굳이 이미 알려진 실수를 '또다시' 거론하는 이유는 단순 실수로 치부하고 넘어가기 어려운 사안들이기 때문이다. 총리의 실수 시리즈에는 무지ㆍ무례ㆍ무시라는 3무(三無)가 담겼다. 731부대 답변에서는 무지를 그대로 드러냈다. 빈소 발언에는 무지뿐 아니라 무례까지 섞였다. '국가 거덜'을 운운한 대목은 국민을 협박한 무례와 다름없다. 재녹화 소동은 토론 상대방에 대한 무례이자 방송 관례ㆍ절차의 무시로 볼 수 있다. 당혹스럽다. 지난해 9월 국무총리에 지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의아했으면서도 일말의 기대를 가졌기에 실망감이 더 크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정운찬이 누구던가. 지나온 길만으로도 주목받을 만한 인물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이며 서울대학교 총장 출신, 개혁을 표방하는 진영에서도 영입을 시도했던 유력 대권 후보….' 인간적 매력도 있다. 온화하게 보이는 인상처럼 그는 상가에서는 누구보다 오래 앉아 처음 대하는 한참 후배들과도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다. 부산 사격장 화재참사를 당한 일본인 유가족에게 무릎을 조아리며 사죄한 장면도 그의 진정성에서 우러나왔다고 믿는다. 양극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교육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장치인 지역할당 입학제도가 도입된 것도 인간을 중시하는 그의 서울대 총장 재임시의 업적이다. 정 총리의 실수 시리즈가 당혹스러운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과연 무엇이 존경과 기대를 받던 정운찬으로 하여금 잇따른 구설수에 오르게 만들었을까. 총대와 집착 때문이라고 본다. 취임 4개월 동안 8번이나 충청권을 방문한 이유는 총대를 맸기 때문이다. 치열한 세종시 논란에 없는 게 있고 있는 게 있다. 대통령은 보이지 않고 총리만 뛴다. 원전으로 박수받는 대통령이 침묵하는 동안 정총리가 고군분투해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총대를 짊어진 총리는 왜 그토록 집착하는가. 속단할 수 없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격 때문인지 난제를 풀 사람은 충청도 출신인 자신뿐이라는 강박감 때문인지, 미래로 가는 디딤돌로 여기고 있기 때문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정 총리의 속내는 알 수 없어도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서는 분명한 점이 하나 있다. 정 총리로서 해결할 수 있는 범주를 이미 떠나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의중이 바뀌지 않는 한 세종시 해법은 난제 중의 난제다. 총대와 집착에서 벗어나야 정 총리가 세종시 수정안이 통과되기를 희망한 4월,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진다. 지금의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즉 총리가 총대를 맨 상황에서 수정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는다면 책임론이 불가피하다. 총총걸음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총장-총리-총통(대통령의 중국식 단어)'으로 이어지는 3총(三總)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총장-총대-총총'으로 바뀌어 현실로 나타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경제가 어려운 때일수록 경제전문가인 그가 할 일이 세종시뿐 아니라 산적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총리는 실언과 실수에서 벗어나려 노력하기 전에 총대와 집착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세종시 문제 자체가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이 풀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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