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수산수리조선소의 시설자금을 위한 변동금리부사채(FRN) 발행을 위해 홍콩을 방문했을 때 홍콩시청 외벽에 붙어 있는 엠블렘을 보고 매우 흥미롭게 느낀 적이 있다.왕관을 쓴 사자 한마리와 맨머리의 용 한마리가 홍콩섬을 딛고 마주 서서 중간의 방패를 서로 차지하려고 각자 제앞으로 끌어당기는 모습이었다. 방패에는 홍콩을 상징하는 무역선 두 척이 항해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위에는 역시 왕관을 쓴 새끼사자 한마리가 두발로 서 있다. 그런데 이 새끼사자는 용에게서 빼앗은 여의주를 어미사자에게 바치는 형상을 하고 있다.
여기서 나타난 어미사자는 빅토리아왕조의 영국왕실이고 용은 청나라의 중국왕실을 뜻한다. 새끼사자는 빅토리아 여왕이 1백50여년 전 홍콩으로 파견했던 대영제국 함대다. 이 함대는 청나라와 아편전쟁을 벌여 이긴 뒤 그 전리품으로 홍콩섬을 빼앗아 영국왕실에 진상했다.
이 엠블렘 속의 여의주가 용에게 되돌아왔다. 동양의 진주(동방명주)로 불리는 홍콩은 영국보다 1인당 소득이 높은 부유한 지역이자 동남아의 금융·무역중심지다. 중국 대외경제무역부의 최근발표에 따르면 개혁·개방 이후 지난해 말까지 중국이 받아들인 외국인 투자액은 1천7백65억9천3백만달러다. 이 가운데 60%가 넘는 1천여억달러가 홍콩기업의 금고에서 나갔다. 홍콩사업가가 광동성에 세운 제조공장은 3만개에 달한다.
중국에 있어 홍콩주권 회수는 1백50여년 전의 치욕을 씻는 국가적 경사였다. 그러나 영국에는 애통하게도 1백50여년 전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었다.
기업경영 또한 이와 같은 이치가 아닌가 생각된다. 1백년 대계를 세우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1백년후 다음 세기의 주역들에게 약속을 지키는 일, 때로는 회사의 이익을 접어두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실천해 나가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본다.
아무튼 홍콩은 이제 되돌아가기 싫어도 역사의 약속이행으로 유니언 잭을 역사 속에 묻어버리고 오성홍기를 휘날리며 또다른 1백50년, 아니 6천년을 기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