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고치기 위해 먹은 약이 다른 병을 일으킨다면 어떨까. 프레온가스(CFC)의 대체물질이 이같은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냉장고 냉매, 발포제 등에 쓰이는 프레온가스는 남극 하늘에 「오존구멍」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진 환경오염물질. 선진국은 96년부터 생산을 금지했고, 우리나라도 2010년까지는 생산을 중단해야 한다.
80년대 들어 세계 각국은 「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쟁적으로 프레온 대체물질을 개발해 왔다. 덕분에 대체물질도 많이 나왔다. HFC, HCFC 등이 그것. 프레온과 비슷해 만들기 쉬우면서도 오존을 파괴하지 않아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엉뚱한 곳에서 암초가 나타났다. HFC, HCFC 등이 지구온난화 현상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들 프레온 대체물질의 지구온난화 영향은 이산화탄소보다 약 1,000~4,000배 이상 크다(100년 누적 기준). 대체물질은 아직 배출량이 적어 실제로는 이산화탄소보다 영향이 적지만 앞으로 프레온가스 대신 사용되면 사정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프레온 대체물질의 기막힌 운명은 얄궂게도 「원조」 프레온 가스와 비슷하다. 아들이 아버지의 전철을 닮는 셈. 프레온 가스도 처음에는 냉매로 쓰이던 암모니아의 대체물질로 개발됐다. 암모니아가 워낙 환경에 해로워 당시로서는 환경에 가장 해가 없을 것으로 보였던 프레온을 찾아낸 것이다.
과학자들은 최근 요오드화합물(CF3I) 등 또다른 프레온 대체물질을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요오드화합물은 요오드의 생산량이 적다는게 문제다. 불화에테르나 불화알칸도 좋은 대체물질로 생각되지만 아직 생산공정이 개발되지 않았거나 너무 비싸다.
프레온 가스가 오존층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지탄을 받고, 프레온 대체물질은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듯이, 또 다른 대체물질도 나중에 환경에 해로운 것으로 판명될 수 있다. 과학자들이 아예 환경에 해가 「있을 수 없는」 물질에 도전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바로 물, 이산화탄소 같은 것들이다. 프레온 대체물질을 개발하고 있는 정문조박사(한국과학기술연구원)는 『인간이 만든, 자연계에 없던 물질은 꼭 뒤탈이 났다』며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이 궁극적으로 프레온 가스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김상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