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원은 중소기업들의 큰 관심을 모았던 환헤지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 소송에 대해 법원에 유리한 쪽으로 판결을 내렸다. 아직 상급심 소송도 남아있고 개별 사례마다 다르긴 하지만 일단 법적인 윤곽은 드러난 듯하다. 이와 관련해 미국에서 발생했던 유사 사례를 참조해 보는 것도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미국 금융기관인 뱅커스 트러스트는 지난 1993년 금리 스와프의 복합장외파생상품을 판매하면서 금리의 추가적인 하락을 예측하고 일정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1994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수차례 금리를 인상하는 바람에 P&G 등은 계약 당시 생각하지 못했던 거대 손실이 발생했다며 연방법원에 금융사기로 소송을 제기했다. 또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파생상품가치에 대해 뱅커스 트러스트가 회사들을 기망했으며 계약내용의 고지를 누락했다고 결정하고 1,000만달러의 민사벌금과 행정금지 처분을 내렸다.
미국 연방법원은 뱅커스 트러스트가 우월적 지위에서 공정거래의 당연한 고지의무를 위반했는지와 상품가치의 복잡한 전산모델을 인식할 수 있는 기제가 없는 기업에게 유리한 결과만 강조했다면 기망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주로 심리했다. 뱅커스 트러스트는 결국 P&G측에서 전체 손실액 2억달러 중 3,500만달러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화해에 이르렀다.
우리의 키코상품도 양자 간에 산술적으로 기대이익이 같아 이익과 위험이 상호 대가관계를 이룬다고 하더라도 은행들이 이를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는 점을 봐야 한다. 또 수출기업들이 2배 승수의 무한대 손실 가능성을 알았다면 키코계약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상당하기 때문에 양 당사자 간 계약성립의 대전제인 실질적 합의가 없었다고 판단해야 한다.
요즘 금융시장은 세계적으로 통합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미국은 완전공시와 공정거래의 금융시장질서를 법원판결 등의 사후적 구제로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사실상 착오 또는 기망에 의한 계약으로 볼 여지가 충분한데도 재판부가 고심한 흔적은 미흡한 것 같아 이번 판결에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