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로펌 CEO들의 '리얼토크'] <2> 이정훈 법무법인 태평양 대표

"시장개방에 맞설 '한국적 로펌' 자신"<br>비즈니스 중시 외국로펌 달리… 고객에 대한 윤리·신뢰 강조<br>송무^자문등 전분야 톱 지향… 종합병원 같은 로펌 만들것<br>1주일에 책 2~3권씩 탐독… '오토프라'로 스트레스 해소도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정훈(사진) 대표변호사는 소문대로 과묵했다. 인터뷰가 잘 될까 내심 걱정도 했다. 예상대로 대화는 쉽지는 않았다. 유년시절 등 개인적인 질문에는 “특별히 기억 나는 게 없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 대표만 힘들었던 게 아니고 그 당시에는 모든 사람이 힘들었기 때문에, 특별히 내세울 기억이 없다는 설명도 해 줬다. 그는 스스로를 낮추는 데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았다. 대신 대화는 뚝뚝 끊겼다. 로펌 경영에 대한 질문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제서야 그의 말문이 틔기 시작했다. 거침 없었다. 태평양의 비전과 목표에 대한 강한 자신감, 구성원들에 대한 배려 등등. 첫 대화의 어색함은 사라지고, 그의 이야기 하나 하나에 몰입되기 시작했다. 1시간30분이 넘는 인터뷰 시간은 10분처럼 짧게 지나버렸다. 인터뷰 마지막에는 되레 아쉬움이 남을 정도였다. ◇ 태평양만은 살아남을 자신 있다 딱딱한 질문이지만, 법률시장 개방에 대한 전망을 물었다. 그는 자세를 가다듬으며, 손동작도 크게 하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국내 로펌은 아직 초기단계”라며 운을 뗐다. 그는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대형 로펌 중에서도 대비가 안 된 곳은 큰 곤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어떤 로펌이 살아 남고, 죽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태평양만은 반드시 살아 남는다”고 자신했다. “시장개방은 87년부터 나온 얘깁니다. 그때 로펌이라고 할 수 있는 게 김앤장이었는데, 고작 변호사가 50여명 수준이었습니다. 태평양은 로펌을 처음 시작하면서 ‘언젠가 법률시장이라는 것은 개방되기 때문에, 개방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로펌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해 지금까지 잘 해 오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지금의 태평양은 국내 클라이언트(고객)와 외국 클라이언트가 6대4의 적정한 비율을 유지하고 있고, 송무와 자문서비스 매출비중도 5대5 정도로 균형을 맞추고 있다며 가장 안정적인 로펌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외국 클라이언트(고객) 비중을 높혀야 한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그 반대”라며 “외국 고객의 비중이 높아지면 시장이 개방됐을 때 오히려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 "종합병원 같은 로펌이 목표" 이 대표는 태평양을 ‘종합병원 같은 로펌’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 그는 “업계 1, 2위라는 명성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태평양은 모든 서비스에서 톱 클래스를 차지하는 종합병원 같은 로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윤리’와 ‘신뢰’를 유난히 강조했다. “외국 로펌은 태생적으로 비즈니스를 중시하기 때문에 돈이 된다면 뭐든 지 다 하는 성격입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 정서상 맞지 않습니다. 우리가 외국 로펌처럼 하다보면 금방 신뢰가 무너질 겁니다.” 그는 태평양이 규모에 비해 빛이 나지 않고 있다는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 듯 “태평양은 클라이언트에게 절대적인 신뢰감을 주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그런 큰 그림 속에서 지금까지 줄곧 준비를 잘 해 왔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로펌은 이익집단이 아니고 가치집단”이라며 태평양은 돈이 된다 해서 사회정의에 맞지 않거나 클라이언트의 신뢰감을 무시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러한 신뢰들이 쌓여 태평양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 대표는 “시장이 개방되면 진짜 1, 2위가 가려질 것”이라며 여유까지 보였다. ◇ 나이에 대한 핸디캡 있다 다시 개인적인 이야기로 돌아 왔다. 처음과 같은 어색함은 없었지만, 그는 지난 30년간 숨겨온 자신의 핸디캡에 대해 털어 놨다. 그는 올해 60세. 47년생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나이에 대한 핸디캡이 있다고 한다. 한국전쟁 피난 시절,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 때문에 어떻게 바로 위 친형과 함께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다 보니 또래들 보다 3~4년 일찍 대학에 입학해 64학번이 됐다. 또래들은 겨우 중학교 2~3학년이었는데 말이다. 이 대표는 “당시 사회가 혼란하다 보니 학교에 늦게 들어가거나, 빨리 들어간 친구도 있어, 또래라도 3~4년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그런데 사회에 나오니 오히려 동년배보다 ‘어린 나이’는 핸디캡이 됐다. 이 대표는 나이를 우선시하는 한국 정서에서 나이와 학번의 불일치로 인해 괜한 불편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어디가서 나이 얘기를 먼저 묻거나,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이 대표는 “내 나이가 드러날까봐 솔직히 걱정해 본 적이 많다”며 “다른 건 몰라도 나이에 대한 핸디캡은 분명 있다”고 30년 넘게 감춰온(?) 진실을 고백했다. ◇ 1주일에 책 2~3권 읽는 독서매니아 이 대표는 보기보다 섬세하다. 육중한 거구의 취미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그는 오토프라(자동차 모형) 매니아라고 한다. 이 대표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도 오토프라 모델링(조립)을 즐긴다고 한다. 이 대표는 또 1주일에 책 2~3권을 후딱 읽어치우는 독서 매니아로 소문나 있다. 이 대표는 최근에도 직원들에게 교세라 그룹의 창립자인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이 쓴 ‘카르마 경영’과 마이클 르고의 ‘싱크’(한국 번역으로는 ‘위대한 결단으로 이끄는 힘’), 예종석 교수의 ‘아주 특별한 경영수업’ 등을 읽고 주위에 맹렬히(?) 권하고 있다고 한다. 이 대표는 한번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해 내는 대단한 집중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최근에는 사진 찍는 취미에 흠뻑 빠져 있다고 한다. 외부 CEO 강좌에 참석해 호기심이 발동, 끝내 카메라를 잡게 됐다는 후문이다. 태평양 구성원들은 “이 대표는 한번 마음 먹은 것은 꼭 잘 할 때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며 “대단한 집념”이라고 부러워했다. 이 대표는 겉으로는 “로펌 1, 2위는 그리 중요치 않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대표의 목표는 업계 1위가 분명해 보인다. 이 대표의 집념이라면 태평양은 머지 않아 전분야 톱클래스에 오를 수 있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골프도 보기플레이어 수준인 이 대표를 보고 있으면, 정말 “청춘은 60세부터”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 묵묵히 자기 일 하는 직원이 제일 좋다 이 대표는 튀는 직원들은 별로라고 한다. 이 대표는 "누가 보든 안보든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직원이 좋죠"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처음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직원이 아주 뜻밖에 열심히 하고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직원들이 있는데 그런 직원들을 보면 굉장히 애정이 가고 우리 사무실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국 책임감과 애사심이 필요하다는 지적인 셈이다. 이 대표는 "책임감이 강한 직원들을 보면 사랑스럽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며 "출근도 20분 빠르고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말했다. ◇태평양 스타일로 인재 키울 것= 이 대표는 "각 로펌마다 인재에 대한 생각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지만 태평양은 태평양 스타일로 인재를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각 로펌마다 기업문화라고 할지, 그런 게 차이가 난다"며 "저 변호사 김앤장 스타일이야, 태평양 스타일이야 할 정도로 명확하게 태평양 스타일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태평양 변호사들의 이직률이 가장 낮다고 자랑했다. 이 대표는 "태평양은 이직이 거의 없다 할 정도"라며 "성적만 우수하다고 영입하는 게 아니라, 창립이념에 맞으면 1년 내내 공을 들여서 데려 오기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쳇바퀴 도는 검사생활이 싫어 변호사 선택 이 대표는 판사 아니면 검사를 원했는데,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사로 임관하게 됐다. 그 다음에 수원지청에서 근무하는 등 4년 정도를 검찰에서 보냈다. "검사라는 직업이 매일 쳇바퀴 돌 듯 하는 겁니다. 아침에 출근해 저녁까지 조사만 하다 돌아 갑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자신을 개발하는데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돼 고민 끝에 공부를 더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사표를 내고 미국에 공부하러 갔습니다. 주위에서는 다 말렸습니다. 그 때만해도 검사가 얼마나 좋을 때야. 허허" 이 대표는 "그 때는 사실 말도 안되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동기들 중에 서울중앙지검에 발령난 사람은 이 대표가 유일했다. 그래서 주위에선 "빽이 좋다"는 소문도 돌았다고 한다. 이 대표는 "전혀 그런 거 없는데…"라며 "그때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강한 추진력보다는 조화를 이뤄가면서 선후배관계도 아우르고 사무실이 한 사람에 의해 끌려가는 게 아니라 자생적으로 서로 맘에 합쳐 끌려가는 사무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CEO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 법무법인 '태평양'은
업계최초 도쿄·베이징사무소 설립' 글로벌화'
법무법인(유) 태평양은 지난 1980년 12월 설립된 이래 꾸준한 발전을 거듭, 조직과 인력은 물론 업무처리 능력 면에서 국내 최고수준의 로펌으로 손꼽히고 있다. 태평양은 국내 최고를 자랑하는 송무분야 뿐만 아니라 자문분야에서도 두각을 보이고 있다. 2008년판 'IFLR(International Financial Law Review)1000'은 태평양을 한국 최우수 리딩 로펌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태평양은 법률서비스의 전문화, 국제화 추세에 부응해 20개의 전문분야별로 변호사의 영역을 나누고, 전문 변호사들이 업무를 처리하도록 하는 유기적인 종합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 로펌으로는 처음으로 2002년에 도쿄사무소와 2004년에 베이징사무소를 설립한 데 이어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몽골 등에서 활발한 입법지원 및 자문활동을 수행하는 등 일찌감치 글로벌 시장 개척에 나섰다. 태평양에서는 증권금융분야의 이근병ㆍ김형돈 변호사, 구조조정분야의 서동우 변호사 등이 맹활약하고 있다.
■ 이정훈 약력 ▦1968년 서울대 법대졸업 ▦1970년 11회 사시합격(사법연수원 1기) ▦1984년 미 뉴욕주^캘리포니아주 변호사 ▦1983년 미국 노트르담대 로스쿨 졸업 ▦1975년 서울지방검찰청 ▦1977년 수원지청 ▦1989~2000년 한국지적소유권학회 부회장 ▦1990년 GATT UR 전문직업서비스 협상 대표 ▦1993년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위원 ▦2001년 한국지적재산권학회 회장 ▦2005년 법무부 외국법자문사법 제정 특별분과위원회 위원장 ▦2007년 대한중재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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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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