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의료산업 선진화를 위해 민영보험제도를 개편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보험업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복지부는 민영보험 부문의 영역이 재정을 갉아먹는다고 보는 반면 업계는 복지부의 방안이 잘못이며, 이 정책이 시행되면 보험산업이 위축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본지는 공ㆍ사보험 영역 조정 문제에 대해 보건복지부 측이 추천한 이진석 서울대 교수(의료관리학)와 정형선 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 보험업계가 추천한 정기택 경희대 의료산업연구원장, 권용진 서울대 의료정책연구실 연구위원 등 전문가를 통해 지상논쟁을 펼쳤다.
복지부 추천 패널
이진석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 "보험간 역할설정 필요"
‘민간의료보험이 활성화되면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된다’는 명제는 기본 상식이다. 연구 결과도 민간보험이 늘어나면 공보험의 재정지출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보충형 민간의료보험이 재정지출을 늘린다’의 여부는 논란거리가 아니고 오히려 얼마나 늘리느냐를 논의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예를 들어 공보험 재정지출이 늘어난다고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편익과 혜택이 늘어나도록 하면 바람직한 일이다. 그만큼 국민 혜택이 늘어나는지를 보는 것이 관건이다. 질병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 경감 없이 재정지출이 늘어난다면 문제다.
공보험은 공보험으로서 역할이 있고 민간의료보험은 역할이 따로 있다. 공보험은 국민의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의료수요을 충족해야 하고 민간은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것 외에 추가적인 비용지불 의사가 있는 사람이 가입하도록 ‘균형된 역할 설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일반국민들이 감기나 배탈을 치료하려고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지는 않는다. 월평균 10만원 정도에 민간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암이나 심장질환ㆍ내혈관계질환 등 중증질환을 보장받기 위해서다.
일부에서 복지부가 논의과정에서 업계를 배제했다고 하지만 이 사안은 1년 이상의 의견수렴 기간을 거쳐 나왔다. 복지부와 재정경제부가 업무 협의를 실시한 회수만도 27번에 달하고 삼성생명 등 업계 임원과 보험개발원 등도 참여해 의견을 개진했다. 이번 논쟁도 최근에 불거진 것이 아니고 지난해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시작된 만큼 논의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민간보험사가 국민공단 통계를 활용하자는 재경부 안도 받아들여졌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본인부담금, 재정 악화"
민간의료보험이 재정적자를 유발하는지의 여부는 민간보험이 어떻게 짜여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공보험 운영자나 의료보장 정책 결정자들은 민영보험이 공보험의 보충으로 끝나야지 재정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고 보고 있다.
공보험 대상 서비스에 본인부담을 시키는 이유는 일부 가입자 부담을 통해 재정부담을 덜면서 비용의식을 심어줘 의료이용에 사려 깊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측면이 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비용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공보험 재정이 악화된 사례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2004년 발표한 한국 의료제도 검토안에서는 민영보험이 발전하게 되면 보충적인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고 명시했다. OECD 안의 골자는 민영보험이 법정 본인부담을 커버함으로써 의료의 비용의식을 없애서는 안된다고 돼 있다. 다만 법정 본인부담이 너무 높은 나라는 민영보험이 본인부담을 커버해서 의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민간의료보험 상품이 없는 게 현실이다. 지금 틀을 잡지 않으면 향후 민간의료보험이 성장할 때 프랑스와 같은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보험사가 법정 본인부담금을 커버하면 재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 의료서비스 증가에 따른 재정부담이 커진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보장성을 강화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보장성이 강화돼 당장 재정이 악화된다면 보험료 인상을 통해 풀어갈 수 있다. 이 문제는 별도로 해결하면 되고 법정 본인부담금을 민영의료보험에서 배제한 것은 신규 가입자에 제한을 가함으로써 제도적인 정착을 이루고 재정악화를 막자는 취지로 본다.
보험업계 추천 패널
권용진 서울대 연구위원 "건보 적자 유발과 무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가 건강보험 재정적자를 유발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민간의료보험 문제는 국민의 의료보장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국민 의료보장 방식은 사회보험 성격을 띠지만 공보험의 사각지대인 높은 수준의 보장을 그동안 민간의료보험이 메워왔다.
보험사들도 그동안 정액형 민간의료보험을 판매하면서 국민을 속이기도 했고 소비자단체들이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가 이런 문제점을 들어 본인부담금 전체를 민간의료보험에서 제외시킨 것은 이론적 근거가 희박하다고 본다.
정책은 예측 가능성이 구체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한다. (보건복지부의) 정책은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이며 수용성은 기존 민간 인프라를 말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이 제도가 이대로 시행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를 인용하면 민영의료보험 가입자의 의료보험료는 높지만 전체 의료비가 증가했다는 증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이 연구 가운데) 필요한 부분은 빼서 써먹고 있다.
생업에 종사하는 국민들이 아프지도 않은데 괜히 병원에 가지는 않는다. 아파도 병원에 못 가는 사람이 더 많은 게 우리의 현실이다. 또 국민이 의료기관을 찾는 회수가 많아지면 질병 조기발견에 따른 조기치료를 통해 건강보험이 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도 있다. 병원 방문 회수가 줄어서 생기는 경제적 피해와 조기치료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서 어느 부분이 더 큰지에 관한 어떤 증거도 아직은 없다.
국민 전체를 부도덕한 사람으로 몰고, 국민과 병원, 보험사가 짜고 국가 재정을 갉아먹는다는 복지부의 시각에 문제가 있다.
정기택 경희대 의료산업硏 원장 "보장 질환 규정은 부당"
민간의료보험이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느냐의 문제는 의료 서비스인 외래와 입원ㆍ치과 등에서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민간보험 가입자와 미가입자를 비교했을 때 입원의 경우는 도덕적 해이가 없는 반면 외래는 일부 도덕적 해이가 있다는 결론이 나와 있다.
이 문제는 지난해 8월 실손형 보험의 생보사 판매를 허용하면서 시작됐다. 건강공단 측은 민간의료보험 시장이 너무 커진다고 본 것 같다. 생보사에서 마케팅을 엄청나게 한다면 모르지만 생보사는 아직 상품도 내놓지 않고 있다.
사실 정말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는 정부가 공보험이 보장하는 영역을 42개 질환 중심으로 늘려간다는 것이다. 이미 우선 순위가 결정돼 지난해부터 25개 질환에 대해 보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이를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기존의 정책형 보험(암보험)도 특정 질환에 국한해서 보장을 하고 있다. 보험전문가들이 암보험을 잭팟보험이라고 부른다. 수만가지 질병 중 암에 걸릴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기존의 민간보험이 질환 중심으로 가는 것도 문제지만 정부조차 그런 방법으로 한다면 문제다. 예를 들어 정부가 정한 우선순위에서 43번째 질환부터는 양쪽에 많은 보험료를 내고도 보상을 받지 못한다.
실손형 보험은 질환에 무관하게 보장해주는 만큼 중요한 상품이다. 건강보험도 질환군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고액의료비가 발생하면 무관하게 보장해줘야 한다. 복지부가 4,800만명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보장성 강화 로드맵에 대한 설명이 없는 점도 문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는 실손형 보험을 죽이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비급여만 보장하라고 하는 것은 복지부가 민영의료보험까지 관리하겠다는 의도가 있다는 추측도 나오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