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위안부 할머니도… 이름모를 네티즌도… 한국인, 日에 마음열다

위안부 할머니도… 이름모를 네티즌도…<br>정신대협 수요시위 대신 지진 희생자들 추모<br>기부 단체 정보 공유등 네티즌도 日돕기 적극


일본의 대지진 참사를 계기로 한국인들이 경술국치 이후 100년 만에 일본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 일본에 대한 감정이 극도로 좋지 않은 위안부 할머니들도, 비정한 자본시장의 논리가 지배하는 증권업계에서도, 이름 모를 네티즌들도 대재앙을 맞은 일본인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위로를 전하고 있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인 지난 1944년 16세의 나이에 일본군에게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했던 이용수(사진) 할머니는 "11일 일본의 대지진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며 "어쩔 것이여. 앙금은 남아 있지만 지금은 피해자들을 위해 애도를 표하는 게 도리"라는 말로 위로의 뜻을 전했다. 그는 1990년 일본군위안부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결성된 데 이어 1992년부터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가 열리기 시작한 후 누구보다 위안부 사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왔다. 미국의회에까지 나가 관련 증언을 했고 일본 총리에게 사죄를 촉구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일본에 닥친 이번 대재앙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는 "솔직히 옛 앙금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그 마음을 접어두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도 나와 비슷한 감정일 것"이라면서 "그동안 일본 정부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해왔지만 현재 분위기에서는 가능한 한 시위를 자제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게 우선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모임'의 이인숙 사무국장은 "대구에 현재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다섯 분 생존해 있다"면서 "지진발생 이후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하나같이 과거청산 문제를 꺼내기보다 사람들이 많이 죽고 다친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요구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몹쓸 짓을 한 일본 정부의 사죄이지 일본인들에 대해서는 악감정이 없다"면서 "전쟁도 직접 겪고 자연재해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 피해를 더욱 피부로 느끼면서 애도를 표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해 정대협은 16일 열릴 정기 수요시위를 지진피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침묵시위로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정대협의 한 관계자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동안 원한 것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 명예회복을 해달라는 것"이라면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지진사태에 대해 할머니들이 인간 대 인간으로서 애도를 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수요시위를 계속 추모시위 형태로 할지는 정대협 내부적으로 좀 더 논의한 후 결정할 계획이다. 일본에 대한 추모 분위기는 정치권에도 이어지고 있다. 이날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일본지진피해대책특위 1차 회의는 당 지도부의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으로 시작됐으며 앞서 14일 열린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 의원과 김성환 외교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가 회의 시작 전 일본 대지진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하기도 했다. 일본 지진피해에 대한 추모 분위기는 증권업계에서도 이어졌다. 이날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자본시장의 이해득실을 분석하기에 앞서 이례적으로 희생자들에게 조의를 표했다. 한범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이날 투자전략 보고서에서 "이번 지진으로 물질적ㆍ심리적 고통을 겪고 계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위로를 드린다. 피해의 최소화와 빠른 복구를 통한 정상적인 일상으로의 복귀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한 연구원은 "지난주 말 이후 일본 지진을 분석하는 보고서를 연이어 작성하고 있다. 자연의 위대한 힘 앞에 합리적인 경제전망의 어려움을 깨닫고 비정한 자본의 논리도 재확인한다"고 개인적인 소회를 드러내기도 했다. 네티즌들도 '일본 구하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현재 트위터에서는 지진피해 지역을 돕고 싶지만 방법이 마땅치 않을 때 '#helpjpkr'라는 꼬리말(해시태그)을 붙여 유익한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티켓이 없어 귀국이 어려운 일본 여행자들을 위해 자신의 집에서 지낼 것을 권유하는 내용도 있으며 일본에 있는 한국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통역 서비스(050-5814-7230)도 제공된다. 네티즌들은 국내에서 직접적으로 기부할 수 있는 유니세프ㆍ네이버 해피빈ㆍ월드비전 등의 온라인 도구나 인터넷 기부 홈페이지 정보를 정리해 공유하는가 하면 청년들이 모여 실제적인 도움을 줄 방법을 모색하자는 단체도 꾸렸다. 한 트위터 사용자(gigabrained)는 "라면과 식수ㆍ분유 등을 직접 보낼 수 있도록 일본 현지에 물품을 전달할 단체를 알아봐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12일부터 '이웃나라 일본을 도웁시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트위터에서 '#helpjpkr'라는 꼬리말을 처음 붙이기 시작한 김현진(@Russa, 27)씨는 "일본에서 유학하는 친구가 전해준 일본 상황을 듣고 즉흥적으로 만들었지만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계신다"며 네티즌들의 적극적인 행동에 놀라움을 표했다. 그는 "14일에는 정보에 빠른 트윗 이웃들이 비행기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며 한 시간에도 수십건 이상 유용한 정보가 올라오는 트위터의 위력을 설명했다. 김씨는 "해시태그를 이용해 일본에서 필요한 물품과 정보를 실질적으로 공유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이곳에서 나온 의견을 모아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로 발전시켜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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