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힘모으면 생산성 향상은 절로 따라와요지난 97년 한국부임 통보를 받은 마티아스 아이혼((Mathias Eichhornㆍ40) 아그파코리아 사장이 가장 먼저 한일은 '김치 담그기'였다.
아직은 생소한 한국을 공부하자는 뜻이었다. 서점에서 한국과 한국요리에 관한 책을 구한 뒤 아내와 팔을 걷어 붙이고 김치 담그기에 도전했다.
어렵게 수소문한 끝에 중국식 배추와 양념, 그리고 장독까지도 구했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요리를 만든다는 게 그리 쉽지는 안은 법.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몇 시간의 공을 들여 완성한 김치 맛이란 한마디로 "이상 야릇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몇 달 후 아이혼 사장이 한국에 와서 맛 본 것은 진짜 한국식 김치의 매콤함만이 아니었다. IMF라는 매서운 칼날이었다.
"10월 안산 공장장으로 부임한 이후 얼마되지 않아 IMF 위기를 맞았죠. 공장 가동률은 40% 이상 줄고, 노사 분쟁으로 한치 앞을 내다보기가 어려웠죠."
돌아보면 당시가 한국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기업경영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직원과의 신뢰 형성이라는 것을 터득하게 됐어요. 노사가 함께 노력할 때 생산성 향상은 그 이상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죠".
그는 회사 조직을 효율적으로 정비하면서 불가능해 보이던 노사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느슨하게 운영하던 공장을 4조 3교대로 전환하고 24 시간 근무체제를 구축했다.덕분에 정리해고는 물론 임금삭감 한번 없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매출 감소의 어려움은 수출로 해결했다. 현재 안산공장 제품의 90%이상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수출된다. 지난해 '무역의 날'에는 '500만달러 수출탑상'과 '외국인 투자 최우수 기업상'도 받았다. 이 같은 실적으로 그는 지난 6월 안산 공장장에서 아그파코리아 사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아그파는 필름회사로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 가장 큰 사업분야는 그래픽 사업부라고 불리는 인쇄출력기 등 프리프레스 분야다.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할 정도.
의료영상 분야도 주력사업의 하나다. 특히 최근에는 X-레이 필름을 디지털화해 다른 병원 등으로 전송하는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국내시장에서 부쩍 관심을 모으고 있으며 성장 속도도 빠르다. 경쟁도 매우 치열할 수 밖에 없다.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변화에 빨리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 회사로 만드는데 주력할 겁니다.
아그파의 사업영역인 이미지, 영상 분야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기술과 환경이 빠르게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죠."
현재 전세계 아그파 매출 중 25%가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한 제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그파코리아의 경우 아직 10% 미만의 제품 디지털분야가 나머지는 여전히 아날로그 제품이다. 그가 사장에 오른 후 아그파코리아의 디지털 부문 매출을 전세계 수준인 25%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각오를 세웠다.
PACS 뿐 아니라 대부분의 제품이 가격요인에 민감하고 현재 경기가 좋지 않아 투자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등 난관이 버티고 있지만 한국은 새로운 기술 및 변화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르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있다.
"본사에서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요. 특히 현지 직원들에게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있죠. 본사 파견인원을 5명에서 2명으로 줄인 것도 현지화를 위한 노력의 증거입니다."
134년 전통을 지닌 아그파는 독일과 벨기에에 본사를 두고 있다. 지난해 총 매출은 52억 600만 유로(약 6조원)며 디지털 영상 처리분야 선두에 위치해 있다. 아그파코리아는 91년 설립됐으며 지난해는 매출 1,130억원을 기록했다.
그는 "현재 가장 높은 매출이 이루어지고 있는 분야가 그래픽 시스템 부분이지만 앞으로 10년 뒤에는 의료 영상사업부가 가장 많이 성장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료영상기기, 현상기, 인쇄출력기, 필름 등 사업부문이 너무 다양해 소비자에게 회사의 이미지를 분명하게 전달하기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영상(이미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회사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라이프스토리
61년 독일에서 태어나 프랑크푸르트의 요한 볼프강 괴테 대학에서 화학박사 학위를 받은 엔지니어 출신.
90년 독일 훽스트사의 R&D 프로젝트 매니저, 96년 아그파 게바트사의 R&D 프로젝트 매니저를 거쳤다.
97년에 한국아그파산업 전무이사 겸 공장장으로 부임하며 한국과 첫 인연을 가진 뒤 올해 6월, 아그파코리아와 한국아그파산업 사장으로발탁됐다.
◆◆◆원포인트 스피치
"한국적인 것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위한 노력이 노사문제 뿐 아니라 갖가지 경영활동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는 한국에 근무하는 외국인 최고경영자(CEO)의 중요한 역할은 서구식 사고 방식과 한국식 사고방식의 조화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구적인 방식이나 경험만을 고집하지 않고 한국의 문화ㆍ환경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서로간의 장점을 조화롭게 응용해야 한다는 것.
특히 공장장으로 부임한 뒤 노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시간, 노조원들과 대화하하면서 직원과의 정보 공유의 중요성도 배우게 됐다.
그는 "외국인 CEO로서 독단에 빠지지 않기 위해 직원들과 의사소통에 항상 높은 관심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뢰가 깔려있지 않는 의사소통은 언제나 일방적인 강요가 되기 때문"이라며 "서로간의 믿음을 바탕으로 직원들에게 좀더 많은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병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