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8월28일] 윌리엄 스미스


[오늘의 경제소사/8월28일] 윌리엄 스미스 권홍우 편집위원 ‘기원전 4004년 10월26일 오전9시.’ 16세기 영국의 한 성직자가 주장한 ‘창조의 순간’이다. 사람들은 이를 19세기 중엽까지 믿었다. 근거 없는 믿음은 초등교육을 겨우 마친 측량기사로 인해 깨졌다. 주인공은 윌리엄 스미스(William Smith). 지질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이다. 1769년 잉글랜드 중남부에서 농사와 대장간을 병행하던 중농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여느 천재처럼 평탄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여덟 살에 아버지를 잃고 삼촌 집에서 기거하며 눈대중으로 측량을 배웠다. 철강ㆍ석탄광산 개발과 운하 건설이 한창이던 시절, 수많은 갱도와 공사장은 그에게 커다란 교실이었다. 지표와 암석층ㆍ화석에 빠져든 그는 얼마 안 지나 ‘지층 스미스(Strata Smith)’라는 별명을 얻었다. 1815년에는 최초의 지질도를 선보였다. 영국 전역 1만6,000㎞를 뒤지고 다니며 측량과 채석장 사업에서 번 돈을 연구에 쏟았지만 언제나 돈이 모자랐던 그는 1819년 6월, 채무자 교도소에 들어갔다. 80여일의 수감기간 중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아내는 정신병에 걸리고 학문적 성과는 귀족 출신의 현역의원이 훔쳐갔다. 출감 후 그의 진가를 알아본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지층연구와 화석연구소 설립 등에 전념, 옥스퍼드대 명예박사 학위도 얻고 동시대의 최고과학자 을러스틴의 유산으로 제정된 상도 받은 스미스는 1839년 8월28일, 70세로 생을 마쳤다. 스미스의 진정한 업적은 과학에서 종교적 편견을 극복했다는 점. 신이 모든 피조물을 동시에 창조했다면 어떻게 지층마다 다른 화석이 나올 수 있느냐는 스미스적 접근은 다윈의 진화론을 거쳐 현대 과학문명의 꽃을 피웠다. 그의 지질도는 20세기 이후부터 이렇게 평가 받았다. ‘세상을 바꾼 지도.’ 입력시간 : 2007/08/2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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