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사회연대은행 상임이사> "대출 목적요? 원리금 회수가 아니라 서민 자활이올시다"<br>사회연대銀 2003년 첫 대출 후 총 400건·83억 빌려줘<br>"우리는 한 배 탔다" 전문가 투입 사업 지원까지<br>무보증·무담보 대출에도 상환비율 90% 웃돌아
| 이종수<사회연대은행 상임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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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등포에서 광혜안마를 운영하는 시각장애인 문광석씨는“사회연대은행으로부터 자금지원은 물론, 경영컨설팅까지 받고 있어, 그 고마움은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씨는 연 매출의 1%를 사회연대은행 기금으로 기탁하고 있다. /사회연대은행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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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층을 대상으로 무보증 소액대출 사업을 실시하는 마이크로 크레딧(Micro credit) ‘사회연대은행’이 국내에 처음으로 법인등록을 한 것은 지난 2002년 11월 30일.
사회연대은행은 그 이듬해인 5월 첫 대출을 시작으로 지난해 12월 현재 총 400건, 83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 같은 실적에도 불구, 비교적 생소했던 사회연대은행이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마이크로 크레딧 운동을 처음 시작한 방글라데시 출신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총재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후인 지난해 10월 한국을 방한하고 나서 부터다.
이후 종교단체 등을 중심으로 마이크로 크레딧 형태의 소액대출 운동이 점차 활기를 띄며 벼랑에 몰린 저소득층의 숨통을 터주고 있다.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을 국내에 처음 들여와 사랑의 불씨를 지핀 이종수 사회연대은행 상임이사장을 리빙앤조이가 만나 보았다.
-사회연대은행의 사업목적은 대출금 회수가 목적이 아니라 수혜자의 자활이라고 들었다. 이 같은 사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마이크로 크레딧을 처음 접한 것은 캄보디아에서 어드밴스드 뱅크 오브 아시아(Advanced Bank of Asia)의 설립을 추진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마이크로 크레딧을 처음 접했다. 그 후 인도네시아 노동부의 농촌빈민을 위한 직업훈련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환란을 겪으면서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그 후 2002년 8월경 삼성에서 ‘여성가장을 위한 창업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겠느냐’는 제의가 왔다. 그 자금을 종잣돈으로 해서 일을 벌인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캄보디아ㆍ인도네시아 일을 하면서 옛날 어려웠던 시절의 추억, 그 동안 나만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자괴감,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옥살이 했던 기억 등이 어우러져 판을 벌이게 됐다.”
-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마이크로 크레딧의 필요성이 점차 증대되고 있다.
“가난 문제는 심해지면 심해졌지 완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노동시장이 유연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장은 외국으로 나가고, 자동화 되고 있어 취업의 기회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빈부의 격차가 심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자리 창출은 그 만큼 힘들어지는 것이다.”
-건당 평균 대출금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2,000만원 정도다. 400만원부터 시작해서 가장 많이 빌려준 것은 3억원이다. 간병인을 위한 사업이어서 여러 명에게 공동으로 빌려 준 것이라 액수가 커진 케이스다”
-회수율은 얼마나 되나.
“90% 정도다. 은행은 상환을 전제로 빌려주지만 우리는 자활을 전제로 빌려준다. 상환은 차후 문제다. 우리나라는 자영 창업비율이 32%에 달한다. 미국이 7%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성공확률은 낮을 수 밖에 없다. 국내 자영 창업의 경우 3년내 문 닫을 확률이 70%에 달한다. 그 와중에 사회연대은행의 대출금 상환율이 90%나 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담보도, 보증도 없으면서 높은 상환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사후관리, 네트워킹, 판촉활동 등 지원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RM(Relationship Manager)이 현장에 가서 도와주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고 본다.”
-이자율이 낮다고 들었다. 낮은 이자율로 사업의 영속성을 담보할 수 있나.
“2~4%정도다. 하지만 그것 가지고는 이익이 안 난다. 그래서 재원은 대부분 기부금에 의존한다. 외국 마이크로 크레딧의 경우 이자율이 시중은행 보다 높다. 그 나라들은 지속 가능한 모델이다. 우리나라는 초기인데다, 받는 문화에 익숙하다. 퍼주기식 지원이 되풀이 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정부지원 자금의 이율이 0~1%사이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자율이 높으면 고리대금의 오해를 받을 수 있어 아직은 낮게 잡고 있다. 부족한 재원은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주로 어느 곳에서 기부를 받나.
“주로 금융기관이 많이 기부하고 있다. 산업ㆍ국민ㆍ신한은행 등이 도움을 많이 주었고, 삼성ㆍLG도 도왔다. 내가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에이온(Aon corp)도 4년째 후원금을 기부하고 있다. 금감원도 음양으로 지원하고 있다. 서민금융활성화는 금감원 목표중의 하나라서 그런지 직원들이 월급의 자투리를 떼서 모아주기도 한다. 금융기관이 적극적인 이유는 은행이 할 수 없는 역할을 우리가 분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 금융기관은 논리상 설득이 쉽다. 정부가 금융기관의 사회적 역할을 평가기준을 삼겠다고 하니 금융기관은 무엇인가 해야 될 입장이다. 게다가 환란 때 금융기관으로 막대한 구조조정 자금이 들어갔다. 그 건 결국 국민의 돈이었다. 국민은행이 2조7000억의 이익을 올렸다고 하지만 결국은 공공에 대해 진 빚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은행의 참여는 마땅한 의무이고 보답이다.”
"무보증 대출도 고마운데 영업까지 도와 줍디다"
마이크로크레딧 수혜 사례 문광석<광혜안마 대표>
영등포에서 '광혜안마'를 운영하는 문광석(44)씨는 26세때 말라리아에 감염돼 시력을 잃은 중도 시각장애인. 그는 치료비로 재산을 다 날리고 방황을 하던 끝에 국립맹학교에서 지압 교육을 받으면서 다시 자립의 꿈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찾은 기존 금융권에서는 그를 외면했다. 다시 한번 좌절의 늪에 빠지려는 순간 그는 우연히 TV 시사프로에서 사회연대은행이 형편이 어려운 서민을 대상으로 저리의 대출을 해준다는 것을 알게 돼 문을 두드렸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문씨는 대출 신청을 했고, 1차 서류전형, 2차 면접, 3차는 최종서류심사를 거쳐 마침내 대출을 받아낼 수 있었다.
문씨가 사회연대은행으로부터 얻어 낸 것은 대출금 뿐 만이 아니었다.
사회연대은행 소속의 전문가들이 인터넷 홍보, 인테리어 등에 대해 조언을 해줬고, 그들은 요즘도 한 달에 한 번씩 들려 부족한 것을 도와주고 있다. 또 인근 복지관에서 돌보고 있는 노인 등을 대상으로 시술을 주선, 고정적인 수입도 확보해 주고 있다.
문씨는 "처음에는 큰 이익이 나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알려지면서 두 부부가 생활하고,사회연대은행 대출금을 갚아 나가는데는 지장이 없다"며 "무담보 대출에 영업까지 자기 일 처럼 챙겨주는 사회연대은행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문씨는 이제 자활의 문턱을 넘어 매년 매출의 1%를 사회연대은행에 기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