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270억원과 825만원

지난주 우리를 한없이 감동케 하고, 또 한없이 격분케 했던 숫자다. 270억원은 실향민으로서 평생 모은 재산을 다섯명의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한 할아버지가 사회에 아낌없이 환원한 돈이다. 825만원은 부부가 변호사와 의사로 일하고 서울 강남의 80평형 아파트에 살면서 1년 동안 벌었다고 국세청에 신고한 금액이다. 270억원과 825만원,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비추는 숫자다. 할아버지처럼 자신보다는 어려운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부(富)의 대물림을 위해 온갖 비리와 탈법을 일삼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825만원은 극히 한 사례에 불과할 뿐이다. 국세청이 지난주 발표한 강남 투기꾼들의 탈세와 투기행위는 충격 수준을 넘어 허탈감마저 들게 한다. 직업이 없어 소득 한푼 없는 아줌마가 아파트 26채를 갖고 있었고, 1년에 세 차례 이상 해외여행을 하는 등 호화생활을 하고 7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네 채나 갖고 있었다. 가진 자들의 탐욕은 끝이 없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들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소위 사회지도층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행태도 투기꾼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국민의 정부를 마무리하는 두 총리지명자의 인준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재산형성과 세금납부 과정은 정쟁(政爭)의 산물로 돌리기에는 너무 실망스럽다. 이 나라, 이 사회를 이끌어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어찌 그리도 4대의무에 소홀했는지 한심스럽다. 기본을 지키지 않은 사람이 치국(治國)을 논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기강이 자꾸 무너지고 있는 것은 바로 솔선수범해야 할 사람들이 기본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가진 사람들은 더 많이 갖기 위해 온갖 탈법과 비리를 일삼고 있고, 그래서 없는 사람들은 더욱 더 심한 박탈감을 느끼며 가진 자들을 질시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가진 계층과 못 가진 계층간의 갈등과 반목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에서 국민통합을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가진 자'와 '덜 가진 자'간의 갈등이 날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소득5분위 배율은 올 2ㆍ4분기 5.02로 외환위기 직전인 97년 2ㆍ4분기의 4.36보다 더욱 벌어졌다. 중산층 붕괴로 잘 사는 사람들과 못 사는 사람들의 차이가 그만큼 커지고 있고 계층간의 껄끄러운 관계도 더욱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있는 사람들이 제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으니 그 몫은 없는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지난해 우리 국민들이 소득에서 낸 세금의 비율인 조세부담률은 22.0%였다. 외환위기를 겪던 98년과 99년의 19.5%와 19.1%에 견줘 3% 정도 올랐다. 가진 자들은 이리저리 피해나가고 애꿎은 월급쟁이들만 짐을 지고 있는 것이다. 국세청은 이번 기회에 투기세력에게 세금을 제대로 매기고 불로소득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을 잡아내겠다며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일과성 구호나 전시행정으로 그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가진 자들과 없는 자들은 권리의 행사에 있어서도, 의무의 이행에 있어서도 평등해야 한다. 그래야만 부자가 부자로서 대우를 받을 수 있고, 가난한 사람들도 요행을 바라지 않고 땀 흘려 일하게 된다.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재산은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을 국세청은 이번 기회에 분명히 보여주기 바란다. 270억원과 825만원,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를 압축한 숫자라고 할 수 있다.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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