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에서는 흑자도산 아우성인데 다른 편에서는 대출 달라 민원을 제기하고….' 엔고로 엔화 대출자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지만 정작 엔화 대출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의 표현처럼 이쯤 되면 '야누스 엔화 대출'이라 할 만하다. 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엔화대출 잔액은 1조4,980억엔을 기록, 1년 새 15.2%(엔화 기준)나 늘어났다. 전체 외화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전년 말보다 8.1%포인트나 급등한 38.3%에 달한다. 엔화대출 이용자의 95.7%는 개인사업자 등 중소기업으로 제2의 키코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엔화 대출을 받고 싶은데 은행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면서 금융당국에 민원을 제기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악' 소리 커지는 엔화 대출자=금융당국의 '국내 은행의 엔화대출 현황 및 대응방안' 자료를 보면 엔화 대출자의 시름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원ㆍ엔 환율은 지난 2007년 말 100엔당 835원에서 지난해 말에는 1,396원으로 올라갔다. 엔고에 따라 원화로 환산환 엔화 대출은 1년 새 10조원에서 20조원에서 폭등했다. 설상가상으로 엔화 대출 평균 금리도 2007년 말 3.32%에서 2008년 말 6.06%로 급등하며 엔화 대출자의 목을 바짝 죄고 있다. 금융당국 분석에 의하면 엔화 대출의 95.7%는 중소기업이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중 의사ㆍ치과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이 42.4%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비해 대기업 엔화 대출 비중은 고작 4.1%에 불과하다 보니 엔화 대출이 제2의 키코 사태로 비화될 조짐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엔화 대출 왜 안 해주나 민원제기=엔화 대출 경고음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커졌지만 정작 대출이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이중 하나는 원ㆍ엔 환율이 올라갈 만큼 올라갔다고 판단하고 미리 대출을 받아 환차익을 얻으려는 신청자들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원ㆍ엔 환율이 1,300원대인데 1,000원까지 떨어지면 현재의 대출금이 자연스럽게 30%가량 줄어들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엔화 대출 문제로 은행마다 골치를 앓고 있고 규제도 강화돼 엔화 대출받기가 쉽지 않다"며 "하지만 이런 가운데 엔화 대출을 통해 '역환차익'을 노리려는 신청자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 신청자는 은행에서 엔화 대출을 해주지 않자 금융당국에 (대출을 받게 해달라고)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존 엔화 대출자들이 엔고에 신음하며 소송까지 준비 중인 반면 다른 곳에서는 신규로 엔화 대출을 받아 엔저 효과를 노리려는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