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10일] 이리 전쟁


[오늘의 경제소사/3월10일] 이리 전쟁 권홍우 편집위원 밴더빌트와 대니얼 드루, 제이 굴드. 19세기 중반 미국을 주름잡던 철도자본가이자 투기꾼들이 한판 붙었다. 대상은 황금 노선인 이리철도(Erie Railroad). 오늘날로 치면 기업인수전이 왜 전쟁으로 불릴까. 주식 매집뿐 아니라 판사와 정치인 매수, 폭력 등 온갖 수단이 동원됐기 때문이다. 싸움의 단초는 가격 경쟁. 버팔로~뉴욕 구간의 운임을 밴더빌트가 125달러에서 100달러로 내리자 드루가 75달러로 맞받아쳤다. 계속된 인하 경쟁은 1달러까지 떨어졌을 때 멈췄다. 밴더빌트는 승리했다고 여겼지만 그게 아니었다. 도축업자 출신인 드루는 소를 사들여 밴더빌트의 화차에 실어 운임 인하의 혜택을 고스란히 챙겨갔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밴더빌트는 분노에 떨면서 드루가 장악한 이리철도를 빼앗기로 마음먹었다. 6개월간 비밀리에 진행되던 주식 매집 작전이 공개된 것은 1868년 3월10일. 주가가 치솟고 경영권이 넘어갈 것 같은 상황에서 드루와 굴드는 인쇄기를 돌렸다. 불법으로 신주를 찍어낸 것이다. 불법 발행된 신주를 하루 동안 700만달러어치나 사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밴더빌트는 다음날 새벽 잠자고 있는 판사를 깨워 드루 일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보안관들이 들이닥치기 직전, 드루 측은 현금을 챙겨 허드슨강을 건너 뉴저지로 도망쳤다. 거대 도시 뉴욕에 밀려 지내던 뉴저지 주의회는 기회다 싶었는지 뇌물을 받고 드루 일당을 옹호하는 법률을 만들어 분쟁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싸움은 밴더빌트가 뉴저지에 뇌물 공세를 시작할 무렵 휴전으로 끝났다. 140년 전 봄 월가를 뜨겁게 달구며 대통령(앤드루 존슨) 탄핵 재판보다 더 많이 신문지면에 올랐던 이리전쟁은 ‘제도’를 남겼다. 기업들이 주식발행 일정을 사전 공표하는 제도가 이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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