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악마의 창녀

국내에도 잘 알려진 철학소설 ‘테오의 여행’의 작가인 카트린느 클레망(61)이 1945년부터 1989년까지의 프랑스 지성사를 소설로 풀어쓴 ‘악마의 창녀’(새물결 발행)가 번역됐다. 책 제목으로 쓰인 ‘악마의 창녀’ 는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이성(理性)을 악마에게 몸을 파는 창녀라고 비유한 데서 따온 것. 데카르트에 의해서 이성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로 정립됐다.이 명제는 사르트르에 의해서는 “나는 자유롭다는 게 두렵지만 어쩔 수 없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장 주네에 의해서는 “나는 폭로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식으로 변주돼왔지만 언제나 서양적 사고의 핵심이었다. 카트린느 클레망은 자신의 소설로 쓴 프랑스 현대철학사를 통해 신비주의 등 다양한 사조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이 이성의 복권을 외치고 있다. 저자는 전세계 현대사상의 진원지 혹은 격납고로 불리는 프랑스 현대철학을 시몬느 드 보봐르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레비 스트로스와 라캉 푸코 바르트 알튀세르의 구조주의, 1968년 5월혁명 이후 베르나르 앙리 레비와 얀켈레비치, 글뤽스만의 신철학 3개 세대로 구분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카트린느 클레망 자신과 친구이자 연인으로 설정된 줄리앙 두 사람의 지식인이다. 이들이 한 방송프로그램의 대담자로 출연하면서 20세기 철학사의 주요 테마 16가지에 대해 설전을 벌이는 과정을 통해 저자는 프랑스 현대지성사의 큰 줄거리는 물론 잘 알려지지 않은 철학자 개개인의 에피소드 등 뒤안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한다. 인간이성이 가장 극악한 형태로 드러난 2차대전의 종결을 알린 얄타회담이 철학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서 시작, 사르트르와 카뮈의 우정과 결별, 5월혁명이 지식인에게 끼친 영향,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베이비 붐 등 20세기 사상사의 문제들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전개되는 이야기는 파라다이스에 대한 토론으로 끝을 맺는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당대의 내로라하는 사상가들과 직접 교유하고 논쟁하며 20세기 프랑스사상사의 중심에서 살아온 저자의 경험이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점에 있다. 카트린느 클레망은 파리 제1대학 교수, 오스트리아 빈 대사, ‘마탱 드 파리’지 문화부장을 역임하는 등 학자이자 외교관, 저널리스트의 다채로운 경력을 가진 인물. 그는 자신이 직접 겪은 한 시대 지식인들을 모두 실명으로 도마 위에 올려놓고 그들의 삶을 탐색, 추적함으로써 살아 꿈틀대는듯 20세기 후반의 지적인 풍경화를 그려놓았다. 그가 이 풍경화의 붓을 내려놓으며 던지는 질문과 해답은 다시 이것이다. “21세기의 철학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우리는 아직도 악마의 창녀라는 ‘이성’이라는 화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우리는 여전히 계몽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종오기자입력시간 2000/04/0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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